기사검색

구독하기 2025.05.26. (월)

기타

[문예마당/寸鐵活仁]학식과 德行을 갖춘 선비精神이

-社會淨化의 根幹이다


 

장재철(張在鐵)
本紙 논설위원
소설가
방무도 위행언손(邦無道 危行言孫)
이 말은 난세(亂世)를 사는 선비(덕스러운 지식인)의 처신법(處身法^몸가짐의 법)을 가르친 공자님의 말씀이다.
즉 나라가 어지럽고 사회에 도의(道義)가 없을 때는 그 행동은 준엄(峻嚴^엄격)하게 해 쉽사리 세속(世俗^세상 풍속)을 따르지 말되 말(言語)만은 신중 자제(愼重 自制)하라는 것이다.

공자님이 살던 그 때가 바로 중국 천지에 군웅(群雄)이 할거(割據^여러 곳에 자리잡고 서로 다툼)해 싸움이 그치지 않고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일삼던 춘추시대(春秋時代)이고 보면,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견의불위(見義不爲)이면 무용자(無勇者)라, 의로운 것을 보고도 마땅히 할 일을 아니함은 용기가 없는 자라고 호통을 치셨고, 소인회토(小人懷土)라 속좁은 간사한 사람은 사욕(私慾)이 많고 비굴해 제 자신의 안락(安樂)만을 생각한다고 내몰던 그분(공자님)이 왜 그런 '약한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서슬이 멀건 시끄러운 세상에서 함부로 입을 놀리다가 구설수(口舌數)로 화(禍)를 당하는 것보다는 선비다운 어진 행동으로 그 체신이나 지키면서 보신(保身)을 꾀하는 편이 슬기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어쩐지 좀 섭섭하고 언뜻 승복(承服)하기가 힘든 데가 있으니 만약 이 세상의 모든 선비(지식인이나 지도자)들이 제 자신의 무사안일(無私安逸)만을 위해서 불의(不義)와 부정과 온갖 추한 것에서 눈을 가리고 말이 없다면 세상이나 나라꼴이 무엇이 될까 하는 불안과 위구심(危懼心)을 가눌 길이 없다.

이웃나라 일본의 속담(俗談)에 '구린내나는 것에는 뚜껑을 덮고 긴것(권력, 좋지 못한)에는 휘감기라'는 말이 있지만….

그렇다고 소위 선비를 자처하는 양식(良識)있는 사람이 구린내나는 더러운 것을 치워 없애려 하질 않고 그 자리에 뚜껑을 덮어 우선 냄새나 막을 궁리나 하고 제몸 하나 편하기 위해서 옳지 못한 부당한 권력(權力) 앞에 꿇어 앉아 고개를 숙일 수가 있겠는가.

노상 그렇지 못하는 게 인간의 기개(氣槪)요, 선비의 지각(知覺)이다.

오직 그것만이 이 사회 구석구석 '뿌려진 소금'이 돼 부패(腐敗)와 변질(變質)을 막고 나아가 한 나라의 퇴운(頹運^쇠약해 짐)을 막고 굳건한 fort(堡壘^튼튼한 陣地)가 되는 것이다.

진흙에서 나왔어도 물들지 않는 연꽃(蓮花)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다가오는 현충일(顯忠日)에 부쳐 졸음(拙吟^시조) 한 수를 읊어 본다.

조국(祖國)의 봄날
동녘은 밝아온다 봄, 가을 있는 江山
연두빛 新綠위에 쏟아지는 맑은 햇살
어여차 문 활짝 열고 아침햇볕 안아라
서릿발 추운 날도 내 가슴은 꽃밭이다
殘雪속 묻힌 동백 돋아 피어 한참일 때
밭 갈아 씨뿌린 땅에 祈求하는 그 마음
고갯길 넘어서서 땀 씻으며 앞으로 보니
뭇 별들 반짝이며 무엇을 속삭일까?
발걸음 멈추지 말라 손짓하는 그 이름(國土統一)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