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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1.09. (목)

결코 이겨볼 수 없는 싸움

김유찬 홍익대학교 교수

 공정한 과세에 대한 사회의 요구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대답 중에 하나가 재벌들의 편법 증여 수단으로 떠오른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이다. 입법화를 검토하겠다고 전임 윤증현 기재부 장관이 대통령 면전에서 언명한 바 있었고 이제 그 논의가 구체화되면서 위헌성과 실효성에 대한 의견이 개진되고 있다.

 

 2004년 세법개정에서 상속·증여세에 도입된 포괄주의 개념이 '충분하게' 포괄적인 개념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이번 세법개정 논의의 계기가 만들어진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로 상속·증여세를 회피하는 사례가 발생했다는 점에서도 분명해진다. 아직 우리 상속·증여세법에서는 경제적 실질이 증여행위에 해당하지만 증여세를 과세할 수 없는 사안들이 발생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를 제도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여지는 수혜기업 지배주주 등에게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거나 늘어난 영업이익에 대해 증여세나 배당소득세 혹은 추가적인 법인세를 과세하는 방법 등으로 거론된다. 말하자면 국제간 다국적 기업의 이전가격 조작을 통한 조세 회피에 적용하는 과세방식을 원용해 보자는 것이며 주식가치 증가분이나 영업이익이 늘어난 부분의 계산은 결국 이전가격과세에서 적용하는 독립기업간가격원칙을 사용해 정상가격을 정하고 이 정상가격에서 충분하게 이격된 가격(예를 들어 30%이상의 차이)의 거래를 재구성하는 방법에 의존하게 된다.

 

 논의에 앞서 짚고 가야 할 사안 하나:조세보다는 계열사간 부당지원을 금지한 공정거래법이나 상법상 주주 대표 소송 등 기존의 규제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있다. 아마도 공정거래법·상법 상의 제도와 세법상의 제도 중에서 굳이 따지자면 공정거래법과 상법 상의 제도가 이 문제의 해결에 주된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정책수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정책수단의 실효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법으로 수취된 뇌물도 과세대상으로 남겨두는 소득세법의 정신에 비추면 공정거래법과 상법과는 별도로 불법 여부에 상관없이 세법에서 이미 이뤄진 사실상의 증여를 증여세로 과세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논리는 찾아내기 힘들 것이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과연 재벌의 편법적 증여를 막는 실효성이 있을까? 우선 정상가격과의 30% 이상의 차이에 대하여만 과세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경계선상에 위치한 경우들을 제외해 과세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기준으로 보이나 이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이 일부 제한되는 것은 분명하다. 자주 지적되는 다른 문제는 기업의 주식가치 상승이 물량 몰아주기로 인한 것인지 다른 요소에 의한 것인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서 그것을 구분하는 방법이 적절하지 않으면 실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동 제도의 적용시점을 증여세 포괄주의가 도입된 2004년 시점부터 소급해 적용하는 방안과 동 제도 도입이후 시기부터 적용하는 방안도 쟁점이 된다. 2004년 이후 현재까지의 시기에 대한 소급적용에는 위헌 소지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유력한 일부 대기업에서 이 방법으로 편법 증여가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적용시기를 제도 도입 이후로 하는 경우 사후약방문 격이 될 것도 당연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문제의 본질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세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실질과세원칙과 조세법률주의의 충돌이다. 이는 이의신청, 심사청구/심판청구, 행정재판의 판단 당사자들이 개별 사안에서 수없이 직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실질과세원칙, 그리고 이에 바탕한 응능과세원칙은 세법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입법의 지도원리가 된다. 국민의 재산에 대해 정부는 단지 이 원리에 따라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다. 정부의 임의적 행동을 배제하고 법적인 안정성을 국민에게 보장하기 위해서 세법은 그러나 또한 조세법률주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 조세법률주의는 법해석의 지도 원리이며 이미 입법화가 이뤄진 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실질과세원칙 조차도 제한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여기까지는 모든 세법 교과서가 말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자주 두 개념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경제적 실질에 따라 판단한 결론과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판단한 결론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교과서에 따르면 세법의 해석에 관해서는 조세법률주의가 우선이다. 그렇게 판단하면 문제는 간단하게 종료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다른 조세제도를 성실하게 운영하는 나라들도 이렇게 단순하게 사안을 처리하는가? 문제는 이렇게 접근하면 과세당국은 잘 준비된 조세전문가들의 자문을 받는 재벌과 같은 유력한 납세자들과의 싸움에서 결코 이겨볼 수 있는 위치에 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삼성을 보라. 현대자동차를 보라. 세금을 안 내는 증여의 방법은 아마도 대를 이어서 그룹의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한 최대의 관건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들은 유력한 조세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수십년간 준비해 실정 세법의 허점을 찾아낸다. 찾아낸 방법은 그러나 계획단계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다가 실행이 이뤄진 다음 수년 후에야 그룹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사회에 여론화된다. 다시 수년이 지나야 정부는 이번처럼 세법의 개정 작업에 들어간다.

 

 현대자동차에서 이뤄진 일을 보라. 벌써 일감 몰아주기의 방법은 정리단계이고 수명이 다한 용도 폐기의 방법이다. 이제 이뤄지는 세법 개정이 무슨 실효성이 있나? 우리나라에서 삼성 다음으로 유력한 재벌집단은 이제 다음 세대로의 증여가 상당히 진척됐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과세할 수 있는 세금의 몇백분의 일만 받았을 뿐이고 이는 부작위를 통해 서민들에게 상대적인 경제적 피해를 안겨준 것이다. 과세당국과 유력한 납세자집단과의 게임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세법해석과 관련한 조세법률주의의 절대적 위치, 실질과세를 제한하는 위치가 이들 납세자 집단에게 큰 도움이 돼 주고 있다. 따라서 실용적이고 성실한 정부라면 그리고 국민이라면 이러한 교과서적인 접근에 만족할 수는 없다.

 

 증여에 대해 충분하게 포괄적인 개념을 둬서 실질적 증여에 해당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실효적인 과세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과세당국의 임의적 판단의 소지가 있고 결과적으로 법적 안정성을 해쳐서 사회의 신뢰이익이라는 공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과 경제를 전공하는 학자들은 이 문제와 관련한 Rationale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실질과세와 조세법률주의 사이의 기존의 양자택일식 선택방식에서 탈피해서 다른 방식의 해법을 통해 더 높은 공익을 추구할 가능성은 없는지.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 능력이 다른 납세자 그룹별로 차별적인 납세협력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전가격과세에서는 다국적기업에게 일반적인 납세자들에 비해 보다 강화된 납세협력의무와 입증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일반화돼 있다. 입증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자료가 납세자에게 있고 납세의무 존재에 대한 과세당국의 입증보다 부재에 대한 납세자의 반증이 수월하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마찬가지로 최고의 법경제적 자문을 받아서 법(조문)의 허점을 잘 찾아내어 이용할 수 있는 납세자에게는 과세당국에게 충분하게 포괄적인 (소득이나) 증여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과세당국과 납세자간의 줄다리기에서 세법이 실질적으로 중립을 지켜주는 방법이 될 것이다. 과세당국의 임의적 판단 여부에 대하여는 국세기본법의 규정을 통하여 별도로 규율이 가능하다.

 

 이 경우 조세법률주의가 지켜주는 공공의 이익, 사회의 신뢰이익은 훼손되는가? 일반인과 든든한 자문을 받을 수 있는 특권층의 납세협력의무의 구분은 오히려 사회의 신뢰이익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다. 무전유죄/유전무죄로 실감되는 법 앞에서의 실질적 불평등과 사회적 위화감을 해소시켜 주는 길이 사회적 신뢰 이익을 더 잘 보장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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