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국세청과 한국조세연구원이 공동으로 '새로운 10년, 국세행정의 역할과 과제'라는 주제로 포럼을 가졌다고 한다. 필자는 유감스럽게도 참석하지 못하고 本紙를 통해 토론내용을 접할 수 있었던 바 얼른 눈에 띄는 대목은 과세에 관한 입증책임의 분배문제였다.
과세에 있어서 입증책임이란 과세요건사실의 存否에 관해 과세관청과 납세자 중에 어느 쪽으로도 확정할 수 없는 경우에 누가 그 근거를 제시할 책임이 있는가? 하는 것이며 입증책임이 있는 쪽에서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주장이 용인돼야 하는 원칙이다. 입증책임에 관하여는 민사 등 모든 문제에서 발생하는 문제인 바 법률에서 특정인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특칙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입증책임 분배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 통설이다. 즉 권리를 주장하는 쪽에 입증책임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세에 있어서의 입증책임은 과세권이 있음을 주장하는 과세관청에 있는 것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로는 국세기본법 제16조의 근거과세원칙과 대법원의 판례를 들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주제발표는 납세자에게 광범위한 입증책임을 지우려고 시도하는 내용이 보인다. 그 이유로는 첫째 신고납세제도에서는 모든 증빙을 납세자가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 둘째 현행 법에도 납세자가 입증책임을 지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는 점, 셋째 현금거래 가공자료 등이 있는 경우에 과세관청의 조사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을 들고 있다.
납세자가 증빙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신고납세제란 자기의 세금을 자기가 부과하는 이른바 자기결정권을 법률이 부여한 것이므로 이에 대한 반증이 없는 한 적법한 것으로 의제되는 법률 효과가 발생하는 법리에 터 잡은 제도이기에 납세자가 증빙을 갖고 있어서 납세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현행 법 특히 상속세법에도 납세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규정이 많이 있는 바 이 또한 위헌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에 이를 이유로 입증 책임을 더 확대하려는 시도는 더욱 잘못된 생각이다. 여기에 더해 조사가 사실상 어렵다는 이유로 입증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은 행정의 편의주의에서 비롯된 발상으로 여긴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주장들은 재정수입에만 비중을 크게 두고 국세 징수의 합리성이나 납세자의 재산권 보호라는 측면을 소홀히 생각한 데서 비롯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조세는 국민들이 법에 따라 정당하게 납부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다. 그러나 마치 '일정한 사회에는 일정한 범죄가 있다'는 '범죄 포화의 법칙'을 얘기하는 것처럼 세금을 내는 사회는 세금을 다 받지 못하는 어떤 구석이 있기 마련이기에 국가 재정의 측면에서 理想으로 삼고 있는 100퍼센트 완벽한 징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큰 고기는 잡고 작은 고기는 놓아주는 지혜도 생각해 봄직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다음과 같은 중국의 정치속담을 본 일이 있다. 네모난 되(됫박)에 죽을 부어 놓고 둥글한 조롱바가지로 떠먹으라고 한다. 이 때 됫박 가운데에 있는 대부분의 죽은 퍼서 먹지만 됫박 구석에 낀 죽은 아무리 훑어내도 긁어낼 수가 없다. 이는 네모난 구석의 죽은 다른 사람의 몫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며 그것까지 훑어내면 잘한 정치라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취지를 담고 있는 얘기다.
우리나라 稅制史는 국가재정 확보와 징세절차의 민주화를 위해 많은 노력의 결과로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재정 확보를 위한 방법으로는 세법마다 공무원의 질문 검사권과 경정조사권을 마련했으며 과세근거를 포착하는 수단으로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주식실명제 등의 법제를 통해 과학적인 세제를 구축함으로써 금융, 부동산, 주식 등 경제거래의 자료와 정보를 정부가 갖게 돼 납세자 본인보다 더 많고 정확한 과세근거를 확보하고 있다. 반면 납세의 절차적 민주화를 도모하는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신고납세(확정)제도로서 납세자의 인격적·재산적 보호와 납세비용의 간소화를 도모했다.
이와 같이 세제는 과학적이고 민주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푼도 빠짐없이 징세해야 한다는 성급한 마음에서 국가에 비해 열등한 지위에 있는 납세자에게 일반적인 입증 책임까지 전가한다면 납세자의 인권이나 재산권의 보호 측면에서 더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 과잉금지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과세입증책임에 관해 합리적이면서 민주적이고 점진적인 연구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