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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1.09. (목)

부가가치세 과세단위를 사업장에서 사업자로 변경하자

안창남 강남대 교수

1. 법의 관점에서 부가가치세법을 읽다 보면 쉽게 읽혀지지 않는 부문이 많다. 예를 들면, 부가가치세의 과세대상을 정하고 있는 제1조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라고만 돼 있지 어디에서라는 장소의 범위가 없다. 따라서 이 조문만으로 보면, 국내 자동차 회사가 미국에서 미국 소비자에게 자동차를 판매할 경우에도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법이 적용될 수 있다. 그 이유는 재화를 어디에서 공급하는가에 대한 제한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조문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부가가치세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경우를 미리 전제해야 한다.

 

 그런데 엄격한 조세법률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세법 질서에서 법조문을 해석하기 위해서 어떤 사실을 전제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법 체계가 허술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부가가치세 도입 당시 외국의 자문위원이 번역해 준 유럽 부가가치세를 그대로 베껴서 입법했던 것이 그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한국조세연구원 개설 등 세무관련 연구 인력 자원이 늘어났던 1990년대초에는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다.

 

 2. 그 반대로 과세관청의 인력구조 및 효율적인 과세행정을 위해 외국의 입법례를 '비틀어서' 입법한 것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과세단위이다. 부가가치세법 제4조제1항에 따르면, 소득세나 법인세와 달리, 사업장마다 신고하고 납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업장이 많은 기업, 예를 들면, 은행의 경우 지점 점포 수만큼이나 사업자등록번호가 있다. 언뜻 보면 과세관청도 업무가 증가할 것 같은데 왜 부가가치세는 사업장마다 해야 할까? 하겠지만 이는 과세관청 내부적으로 복잡한 사정이 있다. 과세단위가 세무조사를 누가 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 부가가치세법 제35조제2항에 의하면, 사업장 관할 세무서장은 사업자에 대한 세무조사권을 갖고 있다. 만일 사업장 기준이 아닌 사업자 기준으로 한다면,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는 현상을 감안해 볼 때 지방 세무서는 '할 일'이 별로 없게 된다. 그러나 이해되는 점도 있다. 부가가치세법이 시행됐던 1977년 무렵에는 세금계산서 발행에 대한 점검 등 납세자에 대한 행정관리가 필요했었던 시기였으므로 세무공무원의 효율적인 운영상 사업장 기준으로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3. 이러다 보니, 납세자는 하나인데, A사업장에서는 부가가치세를 납부해야 하고 B 사업장에서는 환급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납부는 즉시 하고 환급은 한달 뒤에나 받게 되므로 인해 납세자의 자금 압박이 심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사업장 총괄납부제도'가 도입됐다. 여러 조건 아래, 부가가치세의 납부는 주사업장에서 총괄해-즉 납부금액과 환급금액이 있으면 서로 상계하고 난 뒤의 금액을- 납부는 하되, 여전히 신고는 사업장별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다가 2005년부터 '전사적 기업자원관리설비(Enterprise Resource Planning)'를 갖춘 기업에 대해서는 '사업자 단위'로 신고하고 납부할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됐다. 이를 위해서는 과세관청에 신청과 승인을 얻어야 한다. 그러나 설사 납세자가 사업자 단위제도를 선택했다고 해도, 여전히 사업자 등록이나 세금계산서를 주고 받는 것은 물론 세무조사권은 사업장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결국 주사업장 총괄납부제도에다가 신고 기능을 더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6.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간이과세자 및 납부 면제자의 판정이 사업자가 아닌 사업장 기준이어서, 이와 같은 빈틈을 이용한 납세자의 조세 회피나 탈세가 만연하고 있다. 결국 부가가치세법 체계가 이를 제공한 꼴이 된 것이다. 혹자는 사업자 단위로 하면, 효율적인 세원관리가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예를 들면 본점을 관할하는 세무서가 사업자의 지방 소재 사업장을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이는 과세관청의 내부의 업무분장 얘기이지, 이를 위해 사업장 과세단위가 필요하다는 논거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사업자 관할 세무서의 다른 지방에 소재하는 사업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이미 현행 세법상 소득세나 법인세를 조사할 경우 통합조사를 하게 돼 있으므로, 이 주장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7. 결국 납세자의 편의는 뒷전이고 과세행정과 과세편의를 위해서 사업장과세제도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세관청은 행정관리비용을 절감하고 납세자 역시 납세순응비용을 줄여야 한다. 대부분의 세무회계업무가 전산화돼 있고,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하고 있으며 사업용계좌 신고제도가 운영되고 있는 이상, 사업장 과세단위는 납세자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제도이다. 애초 단추가 정상적인 위치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위치에 잘못 끼어진 것이다.

 

 이를 납세자 위주로 뒤집어 보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다. 부가가치세의 납세 단위를 전적인 사업자단위로 하는 것이다. 어려운 것도 아니다. 어차피 부분적인 사업자단위과세제도가 이미 도입돼 시행되고 있으므로, 사업자등록증 통합문제만 조정하면 된다. 그리고 세무조사 관할은 사업장으로 존속시키면 될 일이다. 참고로 EU의 부가가치세는 원칙적으로 사업자 단위로 이뤄져 있으며 사업자 등록번호도 1개만 부여하고 있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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