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쟁이 가열되면서 기업, 특히 대기업의 기부행위에 대한 관심도 상당히 높아진 것 같다. 일단 기부는 선한 행위 또는 적어도 바람직한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세금을 감면해 주는 제도까지 확충해 두고 있다. 그리고 자선이나 기부에 관한 논의가 있는 곳에는 대개 기업들의 동참이나 주도를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업들의 기부행위에 문제가 따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기업이 순수한 선의로 기부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에는 기업들의 기부행위가 권력과의 거래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기업의 기부금이 그러한 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이 설사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않은 것일지라도 도덕적인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금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단체들의 권력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정책 결정에서 특정한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과도할 정도로 막강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만일 기업과 관련된 정책결정이나 특정기업의 특정한 이해상황에 대한 정부의 판단에 영향력을 갖고 있거나 그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시민단체와 해당 기업 간에 어떤 형태의 거래가 이뤄졌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특정 단체에 다수의 대기업들이 막대한 금액의 기부금을 몰아준 것이 그러한 거래의 의심을 받고 있다면 이것은 얼버무려 넘길 일이 아니다.
이러한 거래가 부도덕한 이유를 굳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만 정리의 차원에서 몇가지 적어 본다.
첫째로 기업이 돈의 힘을 이용해서 특정한 시민단체의 목표와 이념을 왜곡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더구나 그러한 방식으로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감추고 이익을 취한다면 시장경제의 발전에도 큰 타격을 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매수당하는 시민단체도 존립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두번째로 시민단체의 권력이 약점이 있는 기업을 위협해 돈을 뜯어내는 모양의 거래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거래는 과거 부패한 정치 권력이나 관권에 의해 자행되던 것들인데 오늘날의 시민단체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기생충보다도 더 질이 나쁜 조직의 협잡이 시민운동의 이름으로 자행된다면 그것은 시민운동에 대한 모독이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에 굴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도 우리 사회에서 정리돼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 은밀한 뒷거래가 아니라 '떳떳한 기부금'으로 이러한 거래가 가장되는 경우 국민의 혈세가 도둑질당한다는 문제가 따르게 된다. 모든 기부금의 선의 여부를 판별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유사한 경우의 부당한 조세지출을 완전히 피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좀도둑이 아니라 대기업들이 이러한 스캔들에 연루된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다.
네 번째로 이러한 거래는 다수의 소액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친다. 부지중에 부끄러운 거래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고 혹은 대주주나 임원들의 보신 비용을 분담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걱정들은 그저 기우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선의의 기부의 중심 세력은 기업이 아니라 기업가를 포함하는 개인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굳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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