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각 정당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겨냥해 각종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조세관련 정책 구상들이 포함돼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세만큼 국민 부담과 직결돼 있으면서 그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도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조세는 소득수준에 영향을 줘 소비나 투자와 같은 주요 경제행위에 영향을 주니 경제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하게 돼 있으며, 그 법률은 정치가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니 분명히 정치적 현상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조세가 본질적으로 정치적 현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시기에 조세관련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조세의 본질이 이러한 데도 혹자는 조세 현안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일기라도 하면 조세문제가 경제 논리에 따르지 않고 정치에 휘둘려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본다. 과연 그러할까? 혹여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건설 현장인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를 보면서 어떤 경제학자가 공해세를 부과해 외부불경제를 내부화해 우리 사회의 효율성을 제고시켜야 한다고 주청(?)드렸다면 그가 온전했겠는가? 아니 그러한 안이 행정당국에서 구상이나 됐겠으며 국회에 상정이나 됐겠는가? 조세는 복합적 현상이다. 한 사회가 처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제 현상을 종합적으로 돌아보지 아니하고는 이해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지난 정부 시절의 '종부세'를 보면 그것이 설령 당시 사회계층들 사이의 깊어진 골을 바로 진단하고 대응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정치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국회의 힘의 관계를 반영해 시행됐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경제의 구조적 힘의 균형상태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함으로써 정권마저 바뀌게 하고 곧이어 그 핵심 내용이 사라진 사례를 보지 않았는가? 이는 한 사회를 복합적으로 인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취해지는 세금제도가 어떠한 운명을 갖는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부유세'가 거론된 적도 있다. '납세자가 갖고 있는 부채를 제외한 순수한 부를 기준으로 능력에 따라 조세를 부과하자'는 취지의 부유세를 놓고, 마치 부자들에 대한 징벌세인 냥 오해하고 오히려 사회 일각에서는 그것을 부추김으로써 사회를 양분시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게 했던 경험 또한 갖고 있다.
지금 다시금 정계 일각에서는 '재벌세' 논의가 한창이다. 또한 '1%에 대한 과세'로 '99%에 대한 복지' 구상이 제시되고 있다. 이는 지금 현재 우리 사회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그 구상의 근원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내리면서도, 노동자들의 시간당 최저임금(2010년)은 미국 6.49달러, 영국 7.87달러, 일본 8.16달러인데 비해 한국은 3.06달러로 주요 선진국의 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놓여 있으며 지금 경제위기로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리스의 4.67달러에 비해서도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도 공공부문의 사회적 지출비중(2007년)을 보면, OECD 평균이 GDP 대비 19.2%인데 비해 한국은 7.6%에 머물고 있다. 또한 조세와 이전지출을 총괄해 볼 때, 정부 개입이전의 전체인구 대상 지니계수가 최근 OECD 평균이 0.457이고 한국은 0.344수준인데, 개입 이후는 OECD 평균이 0.314로 크게 완화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0.315로 큰 변화가 없어 조세와 이전지출이 불평등도 완화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OECD.StatExtracts 자료).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정계 일각에서 제시되고 있는 위와 같은 정책 구상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갈라지고 소외돼 자신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한번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하고 지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버려둔 상태에서 어찌 장기적으로 튼튼한 경제력의 기반을 갖춘 나라를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겠는가? 국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는 기본적 수요들, 의료, 주택, 교육 등과 같은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짐으로써 그들이 갖고 있는 잠재력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장기적으로 생산력도 제고되고 진정 삶의 질도 제고될 수 있지 않겠는가? '재벌세'논의나 '1%에 대한 과세' 논의도 이러한 맥락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조세가 갖는 종합적 성격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재벌이나 1% 부자에 대한 징벌의 형태로 접근해 불필요하게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켜서는 안 된다. 오히려 다같이 증세를 꾀하더라도 객관적 능력에 상응하게 세금을 내게 한다는 점과 아울러 비생산적이고 천민적인 부의 원천에 대해 중과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 사회적 공감대를 얻어낸다면 누가 감히 불편해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옳은 정책이라도 그 사회 속에 스며들 수 있는 전략이 결여되면 현실 사회에서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는 기든스(A. Giddens)가 전 영국 수상 브라운(G. Brown)에게 준 이야기가 새삼 무겁게 와 닿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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