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덴마크에서는 포화지방이 많이 포함된 식품을 대상으로 소위 '비만세'라는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포화지방산 함유량이 2.3% 이상인 경우 포화지방 1kg당 16크로네(약 3천∼3천500원)를 부과하고 있다. 버터와 우유, 식용류, 육류, 조리식품까지 포화지방을 많이 함유한 제품은 모두 비만세의 과세대상에 포함된다. 비만세를 도입한 이후 덴마크에서는 버터류의 경우 30%, 스낵류는 8% 정도 가격이 인상됐다고 한다.
덴마크에 이어 헝가리도 설탕, 소금, 지방 함유량이 높은 가공식품에 대해 개당 10포린트(50원 내외)의 부가세를 부과하고 있고, 프랑스는 청량음료에 330㎖당 2유로센트(30원 내외)를 비만세로 부과하기 시작했다. 영국, 루마니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핀란드 등에서도 비만세 도입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구미 선진국을 중심으로 비만세를 도입한 이유는 비만이 건강에 유해하며 국민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킴으로써 국민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다. 국민 부담을 줄이면서 동시에 불합리한 재정부담 구조를 정상화시키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2004년 세계보건기구는 비만을 인류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 중 하나로 선포했다. 유럽에서는 비만율이 평균 15∼16% 수준에 이를 정도로 높다. 덴마크를 필두로 서구 선진국에서 짧은 기간 내에 비만세 도입이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비만과의 전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최근 국내의 한 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년 남성의 과체중 이상 비율이 40% 수준에 도달했다고 한다. 아직 서구 수준보다는 낮지만 식생활 패턴이 급격히 서구화되면서 우리나라도 조만간 비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전에 기획재정부에서 비만세 도입 문제를 조심스럽게 제기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취지에 동의하고 도입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비만세 역시 세금의 하나로서 식품 가격을 상승시킬 것이 자명한 만큼 반대의견도 상당히 격렬했다. 정부가 가장 손쉽게 비만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하고자 그 부담을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전가시키려 한다는 의견도 분분했다. 뿐만 아니라 비만을 핑계로 세수를 증대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견도 더러 제기됐다.
일면 타당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비만세 도입 문제는 비만세 부과를 통해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일시에 모두 해결할 수 있다거나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의 소비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건강유해식품의 소비를 일부 억제하면서 동시에 비만세 부과를 통해 사회·경제적으로 왜곡돼 있는 의료비 부담의 불공평성 문제를 완화·해소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만세는 비만 자체에 대한 세금이 아니라, 비만 유발인자가 높은 식품, 즉 포화지방이나 설탕, 나트륨 등이 많이 함유된 식품을 주요 과세대상으로 하고 있다. 청량음료나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가 과세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따라서 비만한 사람에게 직접 부과되는 인두세(人頭稅)가 아니므로 인세(人稅)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비만세는 특정 소비품목을 대상으로 과세되는 만큼 개별소비세의 하나이다. 술·담배·석유 등에 부과되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 전까지 청량음료와 설탕 등에 대해 특별소비세가 과세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특별소비세는 수입 억제의 목적이 강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수입 억제의 필요성이 작아지고 세부담의 불공평 문제가 커지면서 비과세로 전환됐다.
최근 개별소비세의 과세 목적은 소비시에 발생하는 외부효과, 즉 외부불경제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음주운전 사고, 간접흡연의 폐해, 석유류 연소에 따른 환경오염 가중 등의 문제 축소에 과세의 주된 목적이 있다. 소비자들이 외부비용을 직접 부담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직접 소비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최근 소비세의 주된 과세기능이다.
그러나 비만세의 경우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건강유해식품을 소비함에 따라 야기되는 비만과 그에 따른 건강상의 비용이 외부비용임에는 위의 것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그 비용을 고스란히 소비자가 직접 부담한다는 점에서는 술, 담배, 석유 등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외부불경제의 내생화를 위한 '시장의 실패' 교정적 조세로서 비만세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한 연구에 따르면 비만인 사람이 정상체중인 사람에 비해 의료비를 40% 정도 더 지출한다고 한다. 비만으로 인해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고 그 비용 중 상당 부분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원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비만하지 않은 사람들이 비만한 사람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료비용 부담의 불공평 문제가 제기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소득·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가 책정된다. 의료비 지출 기여도에 따른 보험료율 차등제도는 없다. 따라서 건강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낮은 보험료를 부담해야 되지만, 오히려 무절제한 생활로 의료비를 과도하게 지출하는 사람들을 지원해 줘 의료비 부담의 불공평성 문제가 야기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비만으로 야기되는 의료비 초과부담 문제를 해소하고자 차등보험료적 성격의 조세 측면에서 비만세 문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차등보험료적 성격의 조세 부과라면 목적세로 부과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이미 건강보험 재정 중 상당부분이 일반 회계에서 지원되고 있는 만큼 일반세로 운영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탄력적 재정 운영과 재정효율성 제고 측면을 고려할 때 목적세보다 일반세로 비만세를 부과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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