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혁이 언급될 때마다 소득세와 법인세에 기반을 둔 직접세 위주의 조세구조에서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에 기반을 둔 조세구조로의 체제 전환은 항상 언급되는 메뉴에 속한다. 미국에서는 'fundamental tax reform'이라는 이름으로 주창자들이 많았고 우리나라에서도 큰 규모의 재원조달 필요성이 부각될 때마다 부가가치세 인상론은 빠지지 않고 제기된다. 그 정치적 파급효과를 인식해 '언제가는' 혹은 '장기적으로'라는 수식어를 동반하면서.
부가가치세를 시행한지 오래된 유럽의 영국, 프랑스, 독일과 같은 나라들에서는 부가가치세의 세율이 20%에 육박하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부가가치세의 표준세율은 10%에 오랫동안 머물고 있으니 그런 사고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세율의 수평적 비교의 차원을 넘어서 들여다 보면 결론은 좀 달라야 한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 세율의 배에 해당하는 세율을 그 나라들이 갖지만 부가가치세 세수가 전체 세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 차이가 없다. 한국조세연구원의 성명재 박사는 최근의 세정신문 칼럼에서 이들 유럽 국가들에서는 소득세의 세율이 워낙 높아서 노동 공급에 대한 경제적 왜곡이 심하기에 주된 재정적 조세로서의 역할을 부가가치세에 분담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을 잘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소득세율은 한계세율로 보나 유효세율로 보나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는 선진적 국세행정이 전제돼야 작동이 가능하다고 하는 부가가치세 제도를 잘 소화하고 있고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우리 관료들 또한 10% 단일세율의 효율성에 대한 IMF의 호의적 평가에 몹시 대견해 한다. 그러나 자랑스러움이 부가가치세에 대한 환상으로 발전해서는 안될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기대와 요구는 금물이다.
직접세의 세목에 비해 부가가치세의 효율비용이 상대적으로 낮게 추계된 바 있다(김우철/김승래, 우리나라 조세제도의 효율비용 추정:주요 세목간 비교를 중심으로, 2007, 한국조세연구원). 세금의 징수는 어쩔 수 없이 개인들의 경제적 행태를 왜곡하고 이를 초과부담(Excess Burden)이라고 부른다. 부가가치세가 다른 세목에 비해 이 초과부담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낮고 따라서 가장 효율적인 조세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부가가치세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는 그러나 불확실한 가정과 중요한 측면에 대한 고려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부가가치세의 상대적 효율성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가정은 부가가치세는 재화와 용역의 소비자가 부담하며 사업자는 소비자에게서 정부를 대신해 징수해 납부하는 역할(거래징수)만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소득세나 법인세와 달리 사업자에게 세부담을 지우지 않으므로 소비보다는 저축과 투자가 장려돼 경제의 성장에 기여하며 효율적이라는 것이나 이는 전적으로 부가가치세의 전가와 귀착을 법률적 측면에서 파악한 것이며 전가와 귀착을 경제적 측면에서 파악하면 결과는 매우 다르게 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부가가치세의 부담은 해당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공급과 수요의 탄력성에 따라서 사업자와 소비자가 나눠서 부담하는 것이다.
투자에 대해 부가가치세가 중립적이라는 주장도 매우 일방적이다. 투자재에 포함된 부가가치세액이 매입세액으로 공제된다는 점에서 투자에 세금부담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이 중립적이라는 주장의 논리적 근거로 제시된다. 그러나 매입세액공제를 감안한 전체적인 부가가치세의 과세표준이 결국 사업자의 각 단계에서 창출한 부가가치라는 측면을 생각해 보자. 창출된 부가가치는 사업자의 이윤, 이자, 그리고 지대로 구성된다. 결국 부가가치세의 성격은 법인세나 사업자의 소득세와 차이가 있을 수 없게 된다.
더해 부가가치세는 면세제도를 가지며 이 면세제도가 가지는 왜곡효과가 크기 때문에 여기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의 정도가 심각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조세세도의 효율비용을 추정하는 기존의 연구들은 이 면세제도의 비효율성을 수용해 추정할 수 있는 모형구조를 갖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부가가치세의 효율비용에 대한 현실적인 판단을 위하여는 면세제도로 인한 비효율의 정도가 같이 고려돼야 한다. 외국의 연구에서는 유효부가가치세율에 대한 추정을 통해 이를 가늠하기도 한다(Gottfried/Wiegard, 1991, Exemption versus Zero Rating, Journal of Public Economics 46, 307-328). 유효부가가치세율은 법정부가가치세율에 면세제도를 통해 매입세액의 환급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으므로 인해 부담하게 되는 추가적인 세부담을 더한 개념으로서 그 자체로서 면세제도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표가 되며 또한 부가가치세의 전가와 귀착을 연구하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우리나라와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 EU 국가들은 부가가치세의 법정세율이 크게 다르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나라들과 우리나라에서 각각 법정법인세율과 유효법인세율이 얼마나 격차를 보이느냐 하는 것이다. EU 국가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면세제도는 나라별로 다소 좁게 설정하면서도 이에 추가해 경감세율을 적용하는 세율체계를 가진다. 이러한 경감세율이 갖는 효율비용과 면세제도가 갖는 효율비용을 비교해 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왜냐하면 IMF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제도의 10% 단일세율체계에 대해 매우 훌륭한 효율적인 제도로 극찬을 하고 있는데 그 평가가 적합한지 판단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U 국가들의 경감세율은 면세제도와 달리 매입세액공제를 해준다는 점에서 누적효과(Cascading Effect)가 발생하지 않고 효율비용이 오히려 적을 수도 있다.
또 하나 고려할 사항은 부가가치세의 징수 과정에서의 탈세 문제가 최근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부가가치세가 시행된지 오랜 시간이 경과되면서 특정 유형의 조세포탈 모형이 발생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지금에 대한 부가가치세의 과세에서 수출에 대한 영세율 적용을 이용한 탈세에 대해 부가가치세의 징수시스템이 취약점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분야에서의 탈세에서만 엄청난 액수의 세수입이 유실되고 있다. 이러한 부가가치세의 환급 사기는 국고로 들어올 세수가 수입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환급시스템을 통해 다른 납세자들이 납부한 세수입이 사기적 행태를 보이는 이들 탈세범들에게 유출된다는 점에서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이러한 형태의 탈세가 유럽과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고 또 이러한 탈세가 금지금에만 국한되는 사례가 아니라는 점에서 부가가치세의 존재 자체에 대한 우려와 부가가치세의 큰 장점으로 여겨지던 매입세액공제제도를 통한 세금계산서의 상호대사(Cross-Check) 기능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존재하는 상황이다.
소득세 부담이 야기하는 경제적 왜곡에 비해 부가가치세가 야기하는 경제적 왜곡이 가볍다는 주장도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 아니며 또한 경제적 왜곡의 정도가 조세체계의 선택에서 고려되는 유일한 기준도 아니다. 이렇게 보면 부가가치세를 강화해 재정적 조세로서 소득세의 부담을 넘겨 준다는 발상은 그다지 발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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