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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1.06. (월)

감세와 증세의 개념 구분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

 글의 제목이 좀 생뚱맞다. 감세와 증세의 구분은 너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감세와 증세라는 말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이 조세개편에 대한 논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 글을 쓴다. 무엇보다도 세율 인하를 무조건 감세라고 말하고 세율 인상은 증세라고 말하는 것이 상당한 혼란을 가져온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감세 혹은 증세라는 용어는 세수의 감소 혹은 세수의 증대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하거나 새로운 재정수요 충당 방안을 논의하는 경우 등에서는 감세나 증세를 이처럼 세수 감소 혹은 세수 증가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한편 특정한 계층의 세부담에 영향을 주기 위한 조치로서 감세나 증세를 생각할 수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감세 혹은 고소득층에 대한 증세 등의 용어를 사용할 때는 세수입의 변동보다는 부담 증감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세수효과만을 갖고 이야기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후자의 경우 즉 특정계층에 대한 부담에 관한 논의에서는 세율의 조정을 갖고 감세나 증세를 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적절할 수 있다. 특정계층에 대한 세율 인상은 그것이 세수를 증가시키든 감소시키든 상관없이 해당 계층의 세부담 증가를 초래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세수를 늘리는 것을 증세라고 하고 세수를 줄이는 것을 감세라고 하는 상황에서는 세율의 인상이나 인하를 증세 혹은 감세의 동의어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도 세율의 조정방향과 세수의 움직이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들이 나타날 수 있다. 좀 더 긴 기간을 생각하면 세율 조정이 세수에 미치는 효과는 훨씬 더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서 좌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우 세수 변동의 방향이 세율조정의 방향과 불일치하는 경우가 흔하게 나타날 수 있다. 경제현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것이 너무 당연한 상식이지만 실제로 세제개편을 논의할 때는 이러한 사실이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을 혹시 경제 분석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순화'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 정책을 논의하면서 이런 정도의 단순화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처럼 무리한 단순화나 조세베이스의 반응을 생각할 수 없는 초단기적 분석에서만 세율의 인상은 세수 증가를 가져올 것이고 세율의 인하는 세수의 감소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에 근거해서 재정건전성을 논의한다든지 새롭게 도입되는 복지제도의 재원조달계획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요컨대, 세율의 인하나 인상을 감세 혹은 증세라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세율의 인하나 인상이 감세나 증세의 의도 하에서 이뤄질 수는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감세 혹은 증세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하지만 그 정책이 유효한 것인가의 여부는 따져봐야 할 일인 것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특정한 세목의 세율을 조정하면서 그러한 조치의 세수효과를 분석할 때 해당 세목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자주 보게 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법인세율을 인하하면 당장은 법인세수가 줄겠지만 법인기업의 투자가 활성화되고 이익의 규모가 커지면 세수감소의 폭을 줄이거나 그것을 능가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은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서 고용이 늘고 매출이 늘어나면 법인세가 늘어나기 전에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로부터의 세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이 효과가 법인세 베이스가 늘어나서 세수감소를 만회하는 효과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효과는 쉽게 간과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법인세율이나 소득세율을 인상해서 재정건전성을 도모하고 복지재원을 충당한다는 여야 정치권의 주장은 매우 허술한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기업이나 근로자의 세부담이 늘어나게 하겠다는 주장이라면 신빙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재정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 경제가 매우 심각한 도전 앞에 서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도전에 앞장서서 대항하겠다는 정치 지도자들과 그들의 정당들이 제시하는 정책 비전이 이처럼 초보적인 허점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금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보다 치밀하고 현실성 있는 중장기 전략을 모색하는 일을 시작해 주기를 그 분들께 당부하고 싶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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