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경제위기와 각종 감세정책의 시행으로 한편에서는 지방세원이 크게 줄어들고 또 한편에서는 양극화 심화로 지난 정부시절 지방으로 이양된 복지서비스 공급의무는 증대되면서 지방재정의 위기적 상황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인식한 것인지 대선을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와 19대 국회 당선자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대선공약에 포함시켜 근본적으로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여야 모두 19대 국회가 개원되면 지방재정 살리기에 매진하겠다는 다짐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지방세원 확충을 통해 지방세 배분비중을 제고시킨다는 것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사실 분권을 주요 국정 아젠더로 내세웠던 참여정부 시절에도 분권을 지향하는 많은 정책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세와 지방세 배분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했다. 한편 현 정부 들어서서는 지방소비세, 지방소득세 제도의 도입이라는 외형적으로 큰 성과를 이뤄냈으나 사실상 국세·지방세 배분 비중은 1% 정도 변화를 가져오는데 불과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지방세 비중 제고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치권의 고민과 다짐은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눈을 바깥으로 돌려보면, 그러한 세원 배분에 관한 논의과정에서 보다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보다 더 소국이면서 대외경제 개방도도 더 큰 네덜란드를 보면 지방세 배분비중이 10% 수준에도 못 미쳐 우리의 20여%에 비해 훨씬 더 집권적 세원 배분구조를 갖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EU집행부로부터 지방세 배분율 제고를 통해 재정분권을 제고시킬 것을 권유받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는 지역경제 관련 제반지표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지역 친화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지역의 소득수준이 높고 상대적으로 격차도 크지 않으며, 그래서 지역간 인구이동도 안정적이다. 지역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지역 고용률도 높을 뿐만 아니라 고기술 숙련노동자 비중도 높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행복지수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방세 비중이 높아야만 지역이 자율적이고 지역친화적인 정책을 구사해 지역친화적 지역경제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에는 기초자치단체의 자발적 연합체로서 VNG라는 기구가 있는데, 중앙정부는 국세와 지방세 세원배분 문제를 포함한 중앙과 지방 사이의 재정관계에 관한 주요 사안을 결정할 때 VNG의 동의를 구해 시행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으며, 중앙과 지방은 각종 협약을 통해서 이러한 관행을 제도화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방정부의 주요 세원인 재산세 구조를 변경할 때도 그러했고, 지방에 대한 보조금제도의 수정이나 보완 및 운영과정, 나아가 정부기능의 재배분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이렇게 보면 주민들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해서는 정부간 재정관계 틀의 변화과정에 지역사회 내지 지방정부의 의사가 항상적으로 폭넓게, 제도적으로나 암묵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작동되고 있는가, 그래서 지방재정 운영의 자율성이 실질적으로 확보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세와 지방세 배분비중을 보고 지방세 비중이 낮아 지방의 자율성이 취약하다거나, 많은 복지사업 수행의무를 지방에 부과하면서도 지방에 그에 상응하는 재원이 배분되지 못해 해당 서비스 공급능력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쯤은 간단한 셈만 할 줄 알아도 누구든 알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그러한 정책이 이어져 오고 있다. 왜 그럴까? 중앙정부가 정부간 재정관계를 변경할 때 지방정부 당국이나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각종 단체로부터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는 메커니즘이 작동해도 그러했겠는가? 국회가 그러한 법안을 상정하고 나아가 집권 지지자들이 정교하게 집권의 효율성을 홍보하고 나서는 경우에도, 그것을 자신들의 삶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정치과정에서 대응해 나갈 수 있는 국민들이 존재해도 그들이 그러한 의사결정을 해낼 수 있었을까?
지역 중심의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자율성을 제고시키는 것이 긴요하며, 그러기 위해서 지방세 비중 제고는 매우 긴요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국세와 지방세 배분문제를 포함해 중앙과 지방의 재정관계 설정과정에서 지방정부 내지 지역사회의 의사가 수렴되고 반영되는 통로를 요구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지자체나 정치권의 논의에도 정부간 재정관계 틀의 조정과정 자체에 관한 논의가 포함되는 날이 앞당겨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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