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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1.08. (수)

주세·담배세 개편, 미루지 말자

성명재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

술·담배는 수많은 애주가·애연가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동시에 수많은 주부들로부터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애주가·애연가에게는 술·담배가 필수품이지만 그 가족들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애물단지로 취급되곤 한다.
술·담배는 다른 식료품이나 기호품과 달리 음주·흡연으로 인한 부작용이 심각하다.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짧게는 음주 교통사고나 담뱃불 화재로 인한 피해에서부터, 길게는 음주·흡연으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질병·질환으로 인한 부담에 이르기까지 그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흔히 애주가·애연가들은 음주·흡연의 비용으로 술·담배 구입을 위해 금전적으로 지불한 직접 비용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주류·담배 매출규모가 연간 십수조원에 이르는 만큼 직접비용은 그 정도 수준이다. 그런데 음주·흡연에 따라 파생되는 간접비용(음주사고, 화재, 건강비용 등)은 연간 수십조원에 이른다. 얼마전 필자가 보수적으로 추정한 결과를 보더라도 흡연에 따른 간접비용만 해도 최소한 연간 20조원 이상에 이를 정도로 거대하다. 배(직접비용)보다 배꼽(간접비용)이 훨씬 더 큰 격이다.
굳이 복잡한 경제학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비용이 편익(또는 수익)보다 더 크다면 그런 사업은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이런 원칙은 비단 개인사업에만 적용되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현상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직접비용만을 고려해 음주·흡연수준을 결정하면, 비록 직접비용이 음주·흡연을 통해 획득하는 효용보다 작더라도, 간접비용까지 고려하면 사회·경제적 총비용이 효용을 크게 초과하게 된다. 작금의 현실이 그러하다. 비용이 효용보다 더 크다는 것은 음주·흡연을 할수록 더 많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역으로 음주·흡연을 감축할수록 개인적으로는 물론이고 사회·경제적으로도 후생이 증진됨을 의미한다.
술·담배의 소비를 감축하는 데 있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애주가·애연가들이 자발적으로 음주·흡연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에 비춰 볼 때 자발적으로 술·담배의 소비를 감축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음주·흡연을 성공적으로 감축한 국가들조차 대부분 소비세를 인상해 술·담배의 가격을 올리는 방향으로 조세정책을 전개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술·담배의 가격이 비싸질수록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굳이 수요·공급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당연한 사회현상이다.
다만 소비세율 인상을 통해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수요 감축효과가 제한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술·담배의 중독성으로 인해 단기간 내에 소비습관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고소비세율로의 전환을 통한 조세정책을 통해 음주·흡연 억제에 성공했던 선진국의 경험을 살펴보면, 단기적 성과에 연연해하지 않고 청소년 음주·흡연 억제에 초점을 맞춰 신규진입을 억제하는 방법을 통해 장기적으로 대처했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음주·흡연 억제의 성과를 단기적 효과로만 평가하려고 하는 우리의 입장과는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즉, 선진국에서는 비록 기존의 애주가·애연가들의 부담이 증가하더라도 다음 세대에 이르러 음주율·흡연율을 성공적으로 감축했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가격을 인상하더라도 단기적 효과가 작기 때문에 세율인상 방안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그 결과 음주·흡연이 더 만연해지는 작금의 현실에 이르고 있다.
소비세율을 인상하면 서민 부담이 증가해 역진성이 심화되므로 주세율·담배세율 인상에 반대하는 여론이 크다. 그러나 정작 서민 부담이 과중한 것의 근본 원인은 술·담배를 너무 많이 소비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술·담배를 많이 소비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소비세율과 가격이 높더라도 결코 서민 부담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작금의 애주가·애연가들의 주머니 사정을 무겁게 하겠지만 종국적으로는 소비를 현저하게 줄임으로써 서민 부담을 가시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 선진복지국가일수록 예외 없이 주세율·담배세율을 모두 매우 높게 책정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서민들을 위해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서민들이 술·담배를 싸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이 결코 아니다. 서민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또한 공정경쟁을 통해 윤택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다. 결코 음주·흡연을 통한 일시적·말초적 위안이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최근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그와 함께 청소년 음주·흡연문제도 매우 심각하다. 그 이면에 술·담배 값이 소득수준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는 점은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이다. 경제력이 미약한 청소년들조차 상당수가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으면서 음주·흡연을 즐기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청소년들이 성인이 될 10∼20년 후의 시점에 이르러 음주·흡연이 더욱 만연하게 될 것이 우려된다. 당장의 사회·경제적 폐해도 문제지만 후대의 문제가 더욱 우려된다. 당장은 술·담배의 소비 억제 효과가 미약할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이 술·담배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해서는 주세·담배세 과세 강화를 더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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