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의해서 주도된 복지 확대, 특히 이른바 보편적 복지의 확산이 불러온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부가가치세의 역할 강화라는 대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물론 복지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는 것이 조세 확대라고는 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복지 확대의 내용과 속도가 적절한가에 대한 치밀한 평가가 선행돼야 한다. 특히 그것은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평가를 포함해야 할 것이다. 복지재정의 확대는 장기적인 함의를 갖는 사회제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 때문에 재원조달 방안에서도 당장의 건전성 확보를 위한 세제개편보다 조세베이스의 순조로운 성장을 통한 장기적인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복지재원 조달방안으로 부가가치세를 거론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부가가치세의 역할 강화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필자는 부가가치세의 세율 인상을 통한 당장의 세수확보 수단으로서의 역할 강화보다 세제 전반의 효율화를 통한 초과부담의 완화와 이에 따른 조세베이스의 보다 건강한 성장을 기대하면서 부가가치세의 역할 강화를 주장해 왔다.
소득세, 법인세, 그리고 부가가치세 등의 3대 세목은 모두 부가가치를 베이스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 법인세는 부가가치의 특정 부분에 대한 조세이고 소득세는 누진세율로 과세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부가가치세는 부가가치 중 국내에서 소비된 부분에 대해서만 과세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세 가지 세목만 살펴보더라도 동일한 부가가치에 중복해서 과세되는 부분이 많이 있으며 과세범위나 방식 등에 따라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오는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법인세는 특정부분에 대한 조세이기 때문에 중복적인 특성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고 왜곡을 나타내는 경향이 타 세목보다 현저히 크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효율적인 세목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담이 역진적일 수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부가가치세가 역진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복지 지출의 재원으로 활용되기 위한 것이라면 복지프로그램의 설계 여하에 따라 재원 조달에서 지출과정까지를 통합한 소득재분배 효과는 매우 누진적인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복지재원 조달수단으로서의 역할에 있어서 부가가치세의 역진성 문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부가가치세제가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다른 문제점들은 세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세무행정제도나 기술 그리고 납세문화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기 때문에 극복될 수 있는 것들이고 또 극복돼야 하는 것들이다. 더군다나 이런 종류의 문제들은 부가가치세만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부가가치세 강화와 관련해서 항상 중요한 문제로 제기되는 것 중 하나가 물가상승 효과다. 우선 세율의 상승분만큼 소비자 물가가 바로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직접적인 효과만 생각해도 상품의 수요 및 공급 탄력성에 따라 세금액이 소비자와 생산자간에 분담되기 때문이다. 다른 세목들도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를 않아서 그렇지 생산원가 상승을 통해 물가에 반영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효과는 일회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3대 세목 중에서 부가가치세제만 갖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장점은 그것이 기업들의 투자에 대해서 중립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법인세는 무엇보다도 다국적 기업의 입지선택에 영향을 준다. 법인세의 평균부담이 높아지면,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다고 할 때, 외국인 직접 투자가 줄어들게 된다. 글로벌리제이션 때문에 조세에 의한 투자 왜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형태가 바로 이러한 다국적기업들의 입지 선택과 관련이 된 왜곡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동일한 세금을 부가가치세로 거둘 경우 부가가치세의 이른바 소비지 과세원칙 때문에 생산 활동은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우리나라 부가가치세율을 아무리 높여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생산을 하는 것이 불리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법인세를 당장 없애고 모두 부가가치세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인세의 비중을 줄이고 부가가치세 비중을 높여가는 것은 전체 조세구조의 효율을 높이는 효과를 갖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세제개혁이 다국적 기업의 경영환경의 개선을 위한 다른 제도 개혁과 함께 이뤄진다면 우리 국민 모두가 목말라 하는 좋은 일자리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어떤 복지보다도 더 우선돼야 하는 중요한 정책목표가 일자리 확충이라는 것은 이제 부정하는 사람이 없다. 무겁고 비효율적인 세금과 인기 영합적인 기업 때리기 공세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생산적인 일자리가 생기는 것을 어떻게 바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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