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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1.08. (수)

유로존 위기와 지방재정 시사점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

정부는 제1차 지방재정위기관리위원회를 개최했으나 인천, 태백, 부산, 대구에 대해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 조치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재정위기단체로 지정되면 지방채 발행과 신규 투·융자사업이 제한되고 일정규모 이상 신규사업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조직도 축소되기 때문에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위기단체로 지정되는 것을 극도로 꺼릴 수밖에 없다. 인천의 경우 지난해말 기준으로 부채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37.7%에 이르고 대구가 35.8%, 부산이 32.1%로 그 뒤를 잇는다. 태백시는 오투리조트 등 지방공사 부채가 순자산의 6배가 넘고 태백관광개발공사의 경우는 부채비율이 834.5%에 이른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우리가 자주 접하고 있는 유로존 재정위기의 대표 주자들이다. 소위 PI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들의 지방정부의 부실문제가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국가의 재정상황에 이들 지방정부의 부실이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발렌시아, 카탈루냐 등 스페인 일부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긴급구제를 요청하고 있고 지자체 17곳이 모두 도산위기라는 보도다. 이탈리아도 시칠리, 나폴리 등 10개 도시가 파산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지방자치단체 재정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의 뉴욕시, 1990년대의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2000년대 일본의 홋카이도 유바리시 재정파산처럼 사례를 찾아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결국 지방정부가 지불능력 범위내에서 건전한 재정 운영이 어려운 경우 지방정부의 신청에 의해 재정재건절차를 진행하게 되며 그 기간동안 연방정부 또는 주정부의 개입과 긴축재정을 통해 위기를 넘기게 되지만 장기적으로 상당한 후유증을 남기게 된다. 이들 외국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으로는 자본적 사업을 제외하고는 빚을 져서는 안되며, 분식회계와 같은 수단을 통해 재정정보 왜곡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근본적으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합리적인 기능 배분을 통해 지방정부의 적절한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 재정 파산은 공개적 불명예(public stigma)로 지방채 채권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서 사후적인 대책보다는 사전적 경보시스템으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우리나라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간 재정관계는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나며 채권시장이 활발하지도 않다. 국가운영 권한을 중앙과 지방간에 수직적으로 배분하는 지방분권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지방교부세라는 최종적인 보루를 통해 중앙정부에 의존하는 정도가 매우 높다. 그것도 지방세나 세외수입과 같은 가격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수입의 비중보다 국고 보조금이나 지방교부세와 같은 비자율적 수입의 비중이 더 크고 국고보조금과 지방교부세 중에서도 보조금의 비중이 더 크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지방정부의 파산사례가 없다. 그러나 끊임없이 지방자치단체의 불요불급한 호화청사, 무리한 수익사업 추진, 여기에 더해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는 복지비 부담 등이 우려를 낳게 한다. 이미 부산시 남구청처럼 직원의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는 경우, 대규모 택지개발공사와 산업단지개발사업을 벌이면서 지방 공기업의 빚을 동원하는 경우, 성남시가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쓴 자금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경우 등 우려의 수준을 넘고 있다.

 

지방정부는 기본적으로 연성제약하에서 지방재정 운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세입의 자율성이 세출의 자율성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주민의 통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방주민의 비용 의식이 강화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어렵게 마련한 지방재정위기 사전경보시스템이 기능하도록 하는 것과 함께 왜곡된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를 바로 잡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경주돼야 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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