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히 역설적이다. 유류값, 전기료가 내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오히려 인상이 살 길이라니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라고 비난받을 만하다. 최근 휘발유 값이 크게 올라 전국적으로 리터당 2천원 아래로 판매하는 주유소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데도 말이다. 연말에는 전기값도 평균 4.9% 인상된다고 한다. 가뜩이나 유럽 재정위기로 인해 살림살이도 어려운 마당에 유류세·전기료 인상을 주장하는 것이 생경하다 못해 헛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사실이다. 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로 수출과 내수가 모두 부진한 가운데 극심한 경제위기의 한파를 겪고 있기 때문에, 당장은 모르지만 여건이 조금이라도 호전되는 멀지 않은 장래에는 유류세·전기료의 인상 문제가, 더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로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무한정 쓸 수 있을 정도로 돈을 충분히 갖고 있다면, 유류세를 면제하고 전기료를 낮추더라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의 재정활동은 궁극적으로 국민들의 부담과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의 일부를 세금 등의 형태로 거둬 국민생활의 안전과 안정,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부담하는 모든 활동은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국민들이 부담하는 것이다.
전기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공기업으로서 전기료를 통제받는 상황 하에서 한국전력공사는 오랫동안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전력을 공급해 왔다. 그 결과 대다수의 국민들은 별 부담없이 전기를 '물 쓰듯' 펑펑 소비해 왔다. 최근 불황의 여파로 살림살이가 쪼달리게 되면서 전기값 타령을 하는 상황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근본 원인은 전기값이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적정수준보다 지나치게 싸기 때문에 전기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 결과적으로 가계부담이 커진 것이다. 전기 과소비로 인해 하절기와 동절기에 블랙아웃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해는 다음 5년을 책임질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이다. 대선이 있는 해에는 통상적으로 세제개편이나 공공요금의 인상이 최소한으로 이뤄진다. 반면에 각종 조세감면이나, 세금 인하와 같은 민원성 요구가 폭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요즘이 그러하다. 지난 몇년간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국내 유가가 크게 상승한 결과, 유가 급등에 따른 고통을 유류세 인하로 만회해 보자는 취지에서 발현된 자연스런 현상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과연 유류세를 인하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보탬이 되는가? 마찬가지로 전기료의 인하 역시 보탬이 되는가? 불행히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연간 유류와 관련돼 징수되는 세금은 약 25조원 수준이다. 연간 조세수입의 약 10분의 1에 이를 정도로 비중이 크다. 만약 유류세를 인하하면 막대한 규모의 조세수입이 감소하고 정부의 재정지출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만약 정부지출을 예전 추세대로 계속 유지하자면 결국 빚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는 종국적으로, 작금의 경제위기를 야기하고 있는 유럽의 재정위기와 같은 위기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인다. 당장의 편안함이 부메랑이 돼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전기료가 싸면 과연 국민들은 행복하기만 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 수년간 유가상승 등으로 인해 전력 생산원가가 급등했다. 반면에 '민생안정'이라는 미명하에 전기료 인상을 억제한 결과 한국전력의 부채는 2007년 3.7조원에서 2011년 14.1조원으로 3배 이상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했다. 원가를 밑도는 전기료로 인해 매년 수조원씩의 적자가 누적됐기 때문이다. 공기업의 부채는 곧 잠재적인 국민부담이다. 당장은 아닐지 모르지만, 누적부채는 지나치게 낮게 책정됐던 전기료 때문에 초래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국적으로 한국전력의 누적부채 문제는 전기료 인상을 통해 해소돼야 한다. 따라서 낮은 전기료 역시 결코 공짜가 아니라 또다른 형태의 국민부담이다. 당장의 내 부담은 아닐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우리 모두의 부담이 되고 우리 자손들의 부담으로 귀결된다.
유류세·전기료의 인하가 공짜가 아닌 것은 이해가 됐지만, 왜 인상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에 대한 대답이 간단하지 않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낮은 유가와 전기료는 우리 삶을 좀먹으며, 종국에는 '빚 잔치'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분별하고 방만한 유류 소비는 환경오염과 교통 혼잡 등을 가중시킴으로써 우리 경제를 멍들게 한다. 에너지 수입 증가로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청정·대체에너지 개발을 지연시키며, 기후변화 협약 등 국제적 환경규제의 흐름에 둔감하게 하여 우리 경제구조를 골병들게 한다. 아울러 저세율로 인한 낮은 유가는 막대한 자금이 투입돼 건설된 지하철 등 대중교통망의 이용률을 떨어뜨림으로써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국가 부채를 증가시켜 국가신인도를 하락시켜 재정위기 가능성을 그만큼 높인다. 더욱이 낮은 전기료는 에너지 절약적 기술개발을 저해해 신성장 동력의 성장을 방해하면서 우리 경제구조를 더욱 에너지 의존적 체계로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유류세·전기료를 인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당장의 호주머니 사정은 어려워지겠지만, 지속가능 성장을 보장하고 더 나은 삶을 기약하기 위해 비싼 에너지를 비싸게 소비함으로써 합리적으로 아껴 쓰는 지혜를 발휘할 시점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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