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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1.08. (수)

'알기 쉬운 세법'이 정말 알기 쉬운가?

안창남 <강남대 교수>

1. 어설픈 질문이지만, 도로 표지판은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초행자나 이방인을 위한 것일까? 지금이야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의 교통안내 지시대로 대부분 운전하지만, 종전까지만 해도 낮선 지역에 가면 도로 표지판이 최고의 길잡이였다. 그런데 곤혹스러웠던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가 처음 표지판에는 있었는데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런 이유 없이 없어지는 경우이다.

 

  예를 들면 경부고속도로에서 창경궁을 찾아 갈 경우, 한남대교에서는 분명 시청과 창경궁이 동시에 표기되어 있지만, 정작 시청에 가면 표지판에 창경궁이 없어서 그 근처를 몇 바퀴 돌다가 광화문에서 창경궁표지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꼴이다. 이는 일관성 부족 및 이방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예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도로표지판은 그 지역의 교통실정을 잘 모르는 외부인을 돕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필자가 프랑스 유학시절, 달랑 지도 하나만 가지고도 유럽 전역의 골목골목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다닌 경험이 있다. 관광선진국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2.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사업을 처음 하는 사람이나 세법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에게 세법전(稅法典)을 주고 그 세법의 내용대로 납세의무를 이행하라고 해보자. 가능할까? 아마도 유명 법대나 로스쿨 출신의 변호사도 어디를 먼저 찾아야 될지 모를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세법이 세금을 잘 아는 세무전문가 위주로 편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친 말로 표현하면 알아서 찾아보고 세금 내라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대부분의 납세자들이 세법전을 열어보는 것을 포기하고, 세무사를 찾아간다. 즉, 대한민국의 납세자 대부분은 세법에 대해 '까막눈'인 것이다.

 

  개선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쉬운 방법은 현행 각 세목별로 되어있는 세법을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래서 납세자가 세법을 펼쳐보고 그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내가 낼 세금은 얼마인지 추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예가 헌법이다. 우리나라 헌법을 한번 읽어보고 나면, 우리사회가 지향할 가치관과 권력구조 형태가 나름대로 읽혀질 것이다. 세법도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3. 납세자가 찾아보는 세법전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세목에 따라 각 세법을 만들 것이 아니라 대폭 개편하여 실체법과 절차법 체계로 재편성할 필요가 있다. 소득관련 세제, 소비관련 세제 및 재산 관련 세제를 그 내용에 따라 차례로 실체법 안에서 기술하면 된다. 이러면 양도소득의 경우 국세기본법, 소득세법 및 조세특례제한법을 일일이 이곳저곳 뒤져볼 필요가 없이 양도라는 장(chapter)만 들춰보면 되는 것이다.

 

 속된 말로, 세법의 내용이 어렵고 복잡해야 세무관련 단체가 하는 일이 많아진다고는 하지만 세법의 입장에서는 납세자가 우선이지 세무전문인 등이 우선 고려대상은 아니다. 국도, 고속도로, 지방도로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공무원의 업무인지는 몰라도 정작 세금을 내는 납세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냥 단지 도로에 불과할 뿐이다.

 

4. 세법체계야 그렇다 치고, 알기 쉬운 세법이 되기 위해서는 그 조문내용이 분명하고 명확해야 한다. 즉,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가 쉬운 용어로 표기되어야 한다. 장문이나 중문보다는 단문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데 기존 세법의 내용을 보면 '건너뛰고 생략된' 단어가 많다. 예를 들면 현행 부가가치세법 제1조에 따르면 "부가가치세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 재화의 수입"에 부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 공급하는 것일까? 이 문구로만 본다면 주어가 없어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다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세무전문가들이야 그게 당연히 '사업자'이지 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법조문에는 사업자란 말이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이번 공청회에 나온 개정안에서는 '다행스럽게'주어는 포함되어 있다. 즉 ‘사업자가 행하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어디서'라는 부사가 없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스마트폰을 팔았을 때도 한국 부가가치세법이 적용된다고도 읽혀진다. 부가가치세는 소비하는 장소를 관할하는 국가에서만 과세되는 것임을 세법이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종전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손 볼 곳이 너무 많다. 사업자가'국내에서'행하는 재화 또는 용역의 공급이라고 고쳐야 한다.

 

5. 다소 '건방진'표현도 있다. 소득세법 제3조 제1항에서는 개인의 납세의무 범위를 규정하면서 "거주자에게는 이 법에서 규정하는 모든 소득에 대해서 과세한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납세자는 모든 소득을 알기 위해 소득세법 전체를 다 뒤져보아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거야 '소득세는 열거주의 과세원칙이니까 제4조에 나와 있는 소득의 구분만 보면 될 것 아니요.' 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 조문은 국제거래가 활성화되기 이전에 만든 조항이다. 그렇다면 국외소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국외에서 지급받은 이자소득부터 시작해서 소득 종류마다 온갖 세법전의 구석구석을 다 뒤져야만 알 수 있다.

 

  아마 상당수 세무전문가들도 국내거주자의 해외주식이나 채권 또는 부동산양도소득을 국내에서 신고하여야 하는지 물어보면 확실하게 답을 해줄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거주자에게 과세되는 소득을'세법에 규정된 모든 소득'이라는 위압적인 표현 대신에, 소득세법 몇 조부터 몇 조까지의 소득에 납세의무가 있다.'고 친절하게 열거해줄 필요가 있다.

 

  헌법은 납세자가 나라의 주인이라고 하는데 세법은 그를'하인'취급하고 있는 모습이다. 알기 쉬운 세법 작업의 지향점이 분명해야 한다. 몇 가지 체계를 가다듬어 세무전문가가 '보기 쉬운'세법을 만드는 것은 당초 목적과 거리가 멀다. 납세자가 본인의 납세의무와 권리를'쉽고 명확하게 알기 쉬운’ 세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품격 있는 선진국 세법이 되는 것이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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