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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5.01.08. (수)

우울한 장기재정전망

곽태원 <서강대 명예교수>

최근 한국조세연구원 개원 2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우리나라의 장기재정전망에 관한 논문이 발표됐다. 2012년 현재의 복지제도와 정책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으로 가정해도 저출산과 고령화의 진전 때문에 2050년이 되면 복지 지출비중과 국민부담률 등이 지금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국가들과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2050년의 국가채무비율은 128%을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도 소위 PIGS의 작년말 평균 수준(120%)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지금은 아직 인구 구조가 젊은 편이어서 사회보험관련 복지 지출수요가 높지 않기 때문에 복지 지출이 OECD 평균보다 크게 낮은 것으로 나오고 있지만 실제 복지제도가 많이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걱정을 하게 된다.

 

여기에다가 최근 여야 대선후보들의 복지관련 공약을 반영시키고, 재정위험의 일부 현실화 그리고 통일이 현실이 되는 시나리오들을 포함시키면 장기 재정전망은 더 우울해진다. 새누리당의 공약을 전제로 하면 국가 채무비율은 2050년 153.9%까지 높아질 수 있고 민주통합당의 공약을 따를 경우 이 비율은 165.4%까지 높아질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주로 우리나라의 재정이 매우 건전하다는 이유로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들이 모두 우리의 국가 신용등급을 역사적인 최상위 수준으로 올렸고 넘보기 어려웠던 일본까지 가볍게 따돌리는 쾌거를 이뤘지만 우리 재정의 속내는 그렇게 단단하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이 전망의 전제가 되는 저출산과 고령화는 거의 확실한 것이다. 실제가 전망치보다 현저히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2050년까지 가는 시간 중에 통일이 이뤄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또 그 기간 중 최근 수년동안 연달아 겪고 있는 경제위기가 몇번 있을 것이라는 점도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운 전제이다. 이 전망에서 최악이라고 가정한 것보다 더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한·중·일간의 긴장은 21세기 중반까지를 바라보는 전망에서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은 전조이다. 종래의 남·북한 간의 군비 경쟁하고는 차원이 다른 방위비 수요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또 한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최근 10여년간 복지비 지출이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소득분배 개선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복지관련 지출에서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조세연구원 보고서의 진단이다. 정치적 포퓰리즘에 줄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보편주의 복지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험에 노출됐거나 취약한 계층을 도와주는 일에 집중하면 같은 지출을 갖고 훨씬 더 효과적인 양극화 해소나 분배격차 해소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표를 의식하면 수혜계층을 넓히는 것이 일반적으로 더 유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나친 보편주의 복지정책을 주장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정직성은 의심받아 마땅하다. 또한 이러한 지도자들을 지지하는 다수의 국민들도 우리 후손들에게 건강한 경제를 물려줘야 한다는 역사적인 책임을 외면하고 있거나 거짓 주장에 미혹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골고루 잘사는 사회가 되려면 먼저 모두가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고 빚을 내서 소비하면 점점 더 가난해지는 길 뿐이다. 저축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잘 나가는 사람, 잘 나가는 기업에게 부담을 집중시키면 하향평준화 밖에 기대할 것이 없어진다. 이런 너무나 상식적인 원리들을 무시하는 사회나 국가는 퇴락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번에 발표된 논문이 객관적인 데이터를 갖고 담담한 어조로, 그러나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발하고 있는 경고에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치인들과 국민들 모두가 우리의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주장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 각자의 그리고 모든 기업이나 기관 혹은 조직의 생산성을 높여서 성장잠재력을 제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공정하게 세금을 거두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특히 국민의 돈을 갖고 생색내기 지출을 일삼는 지도자들은 장외로 밀어내야 한다. 가장 취약한 계층,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계층에게 우선적으로 지원이 이뤄지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일보다 밥그릇 싸움에 더 열중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임진왜란 같은 것을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본면의 외부기고는 本紙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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