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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8. (토)

조세피난처 거래, 납세자로 입증책임 전환이 필요하다

안창남 <강남대 교수>

세무행정상 요즘 와서 부쩍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가 조세피난처, 서류상 회사(paper company) 또는 특수목적 법인(special purpose company)이다. 인터넷 언론매체인 뉴스타파가 여러 차례 한국인이 그 곳에 회사를 설립하고 금융계좌를 개설해 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영국의 조세정의네트워크도 조세피난처에 한국인의 돈이 888조원 이상 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과세관청도 나름 열심히 과세를 하고 있다고 한다.

 

궁금한 것은 우리나라 과세권이 조세피난처에 설립된 기업에게 온전히 행사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내국법인 ‘갑’이 조세피난처에 특수목적법인 ‘A’를 설립했다고 하자. 이 때 갑과 A의 거래가 있을 경우, 우리나라 과세관청은 갑에 대해서만 조사권(구체적으로 이전가격 세제)이 있다. 만일 갑 또는 A가 조세피난처에 또다른 ‘B’회사를 설립하고 거래했을 경우는 더 복잡하다. 그 이유는 [A↔B]사이의 거래는 조세피난처 내의 거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과세관청이 들여다 볼 틈도 없다. 우리나라 과세권은 우리나라에서만 행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세법상 빈 공간을 이용해, 상당수 기업은 미국이나 중국과 거래를 할 때 [갑↔미국법인] 대신에 [갑↔A↔B↔미국법인]과의 거래 형태를 취한다. 때론 A와 B 사이에 제3자를 인위적으로 넣기도 하고, 해외 차명계좌를 이용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해당 거래의 이익 중 일부를 조세피난처에 남겨두기도 하고 때로는 조세피난처 기업의 계좌를 이용해 사업주가 탈세를 하기도 한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듯이, 거래 단계가 많아질수록 한국기업 갑의 이익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거래 당사자에게 몇 푼이라도 남겨줘야 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납세자는 조세피난처에 회사를 세우는 것은 기업 설립의 자유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해외에서 사업을 할 경우 그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막대한 재정상 등의 위험이 조세피난처 기업이 담당해 한국에까지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위험절연 효과도 있다고 한다.

 

반면 과세관청은 그런 사정은 이해가 되지만, 한국에서 ‘제대로’ 세금을 내고 하는 사업이냐고 윽박지르면서 관련된 서류를 다 내놓으라고 한다. 즉, 과세관청은 [갑↔A↔B↔미국법인]과의 거래를 [갑↔미국법인]거래로 간주해 조세피난처에 떨어뜨려 둔 이익을 한국에서 과세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때 과세관청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써먹는 세법 조항이 있다. 국세기본법 제14조에 규정된  실질과세원칙이다. [갑↔A↔B↔미국법인]과의 거래는 형식이고, 이의 실질은 [갑↔미국법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이와 같은 과세관청의 판단 경향에 대해, 법원에서 ‘법률요건 분류설’에 따라 납세자가 잘못된 점이 있다면 그 점을 과세관청이 입증하도록 했었다. 입증하지 못하면 소송이 패소로 이어졌었다.

 

이와 같은 점을 악용해 일부 기업은 조세피난처에다가 국내에서 생길 이익 중 일부를 인위적으로 옮겨 논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역으로 그 이익 중 일부를 국내에 재투자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자금세탁 방법이다. 마치 한국에서 병역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외국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 경제생활은 한국에서 하는 ‘검은머리 외국인’과 같은 행태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은 ‘법적 실질’보다는 ‘경제적 실질’의 관점에서 조세피난처 거래를 재구성한 뒤, 그 거래에 대한 과세처분이 적정했는지를 판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의 과점주주(해당 법인 주식의 50%+1주) 의무를 피하기 위해 조세피난처에 형식상 회사를 세우고 그 회사가 한국기업의 주식을 매입한 경우, 그 형식상 회사의 세법상 법인격을 부인하고, 한국기업의 실제 주주는 외국기업이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08두8499, 2012. 1. 19. 선고).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거래를 사법부의 판단에 의존할 수는 없다. 차라리 법에 명확하게 규정을 하는 것이 납세자의 조세순응비용이나 과세관청과 갈등도 막을 수 있다. 조세피난처 거래와 관련된 외국의 입법례는 다양하나,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조세피난처와 거래에 대해서는 그 거래가 정당함을 납세자가 하도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갑↔A↔B↔미국법인]거래 중 A, B가 실제 세법상 법인격이 있는 법인인지, [A↔B]의 거래가 시가로 이뤄졌는지, [갑↔A]거래가 정상가격으로 거래됐는지, 특히 그 거래가 과연 전체 거래에서 필요한 거래인지를 납세자가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

 

조세피난처와의 거래는 조세공평부담원칙, 조세중립성의 원칙에 비춰 볼 때, 정상적인 국가와의 거래보다 차별적으로 할 필요는 분명 있다. [갑↔미국법인]의 형태보다 [갑↔A↔B↔미국법인]의 형태가 세법상 특별한 이유 없이 너무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여, 조세피난처와 거래 특히 한국기업 갑이 조세피난처 A기업에게 송금한 거래에 대해서는 그 거래가 세법상 정당함에 대한 입증책임을 갑이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현재는 과세관청이 한다). 그 이유는 과세관청이 조세피난처에 과세권이 없다 보니, 투서를 받거나 이상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해 과세를 하는 등 일회적․우발적인 대처만을 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효과적으로 조세피난처 거래에 대한 과세를 할 수 없다. 조세피난처와 거래에 대한 과세당국의 대응이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계속적․반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법과 체계가 재정비돼야 한다. 자칫 법령에 명확한 근거가 없는 부실한 과세는 과세관청의 신뢰성 상실은 물론 납세자의 고통과 불편이 가중될 수 있다. 그리고 과세관청이 모진 수고를 다해 과세를 했지만 정작 그 열매는 로펌이나 회계법인이 손쉽게 낚아채어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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