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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5.17. (금)

(역외)탈세와 조세범처벌법

김유찬 <홍익대 교수>

역사적으로 보면 거의 모든 시대와 지역의 사회는 부패했다. 부패사회가 공정사회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고 현재에도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럴 것이다. 

 

부패한 사회에서는 탈세가 창궐한다. 탈세라는 범법행위가 자행되기 위해서는 국가기관 내부에서 부패한 협조자가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협조자들은 세무공무원이기도 하고, 법조계 사람들이기도 하고 정치인들이기도 할 것이다.

 

나아가서 국가, 시스템, 관행이 탈세의 협조자이기도 하다. 탈세는 국가가 자신의 권리이며 의무인 형사법적 권능을 포기하고 대신에 돈을 취하는 유일한 형법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국가는 징역형을 살아야 할 공동체의 배신자들에 대해 세금 추징과 벌과금을 챙기는 대가로 자유를 선사하는 불공정한 관행을 제도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 사회의 권력 엘리트들이 부패와 탈세의 연결고리에 깊이 관여돼 있는 모습들은 우리나라에서만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 위치한 이탈리아는 그런 면에서 거울에 비쳐지는 우리의 모습이다. 돈이 기사 내용을 지배하는 언론, 이해집단에 놀아나는 정치, 경제 및 정치권력과 담합한 법조인사들, 국가적으로 중요한 아젠다에서 적절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은 그 구조하에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도 이런 수준에 머무를 것인가? 어떻게 탈세의 관행․문화와 단절할 것인가?

 

유럽의 다른 나라 독일은 부패가 심하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도 탈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율(소득․법인세와 사회보장세율)이 높은 탓에 이웃나라인 스위스와 룩셈부르그 등지에 독일 납세자들이 숨겨둔 돈은 많았다. 기업가 뿐만 아니라 공무원, 의사 등 전문직업가, 법조인, 교수 등 광범위한 계층이 참여한 것이 스위스 등지의 은행들의 금융 비밀주의가 허물어지면서 속속 드러났다.    

 

독일에서는 탈세 관행의 단절을 위해 법원이 먼저 나섰다. 2008년의 독일 연방최고법원(BGH)의 제1형사법정의 판결은 탈세범에 대한 형사적 처벌의 수준을 구체화하고 강화시킨 획기적인 사건이다(Az. 1 StR 416/08). 동 판결에서 연방최고법원은 큰 규모의 탈세행위에 대하여는 6개월에서 10년까지의 징역형이 내려져야 함을 밝혔다. 탈세액에 따라서 집행유예가 가능할 수 있으나 100만유로(약 15억원) 이상의 탈세액의 경우 특별한 감형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징역형이 집행돼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다. 과거 많은 탈세범들이 큰 규모의 탈세가 드러났어도 추징세액과 벌과금으로 징역형을 집행유예로 피하던 관행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징역형을 피할 수 있는 사안은 5만 유로(약 7,500만원) 이하의 탈세액의 경우로 제한했으며 5만유로에서 100만유로까지의 탈세액에 대하여는 개별적인 정황에 따른 판사의 자율적 결정이 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그로써 탈세가 특권층의 범죄로서 비밀스럽게 용인되던 시기는 독일에서 지나간 것이다. 그때까지 그곳 사회에서는 어떤 탈세범도 실제로 징역형을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오래 정착된 관행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세무조사자들이 일부 범법 사실을 누락시키거나, 법적인 증빙상황이 완전하지 못한 경우에 특히 탈세액을 100만유로 아래로 낮춰 주려는 유인도 생겼다. 또 감형 사유에서 관대한 입장을 취하고자 하는 세무조사자들도 많았다.        

 

독일 연방최고법원은 다시 100만유로가 넘는 탈세액의 경우 자백이나 세무대리인의 조력을 받았다는 사실이 감형 사유가 될 수 없음을 명백히 함으로써 2008년의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Az. 1 StR 525/11). “어떤 방식으로 탈세해야 가장 잘하는 것인지에 대해 세무사에게 자문을 받는 것이 감형사유가 될 수 있는가?”(독일 연방최고법원 제1형사법정 의장 Armin Nack)

 

법원의 부름에 병원차를 타고 출두하고 의사의 엉터리 진단서로 저지른 범죄의 규모에 비춰 터무니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아내는 인사들의 모습에 우리는 익숙하다. 독일이라면 엉터리 진단서 그 자체가 새로운 형사소송의 대상이 됐을 것이다. 반복되는 부패와 탈세관행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어떤 시작이 필요하고 가능할까?

 

우리 법원에 대해 독일 법원이 사회에 행하는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전관예우라는 집단적 범죄행위에서 스스로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도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국민과 납세자들이 법원에 대해 무언가를 요구할 절차적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실망스러워도 정치가와 국회에게로 요구를 집중하고 국회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법제화해야 한다.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회사의 내용들이 밝혀지면서 역외탈세에 대해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역외탈세에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하여도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물론 여러가지 제도적 요소들이 포함돼야 한다. 역외탈세의 경우 우리 과세당국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범위에 과세자료가 위치하므로 과세와 관련한 입증책임, 정보 제공 및 신고의무에서 납세자의 협력의무를 대폭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 거래의 진정성에 대한 입증 책임을 납세자에게 부담시키고 해외계좌신고제도에서 액수제한을 낮추고 부동산 및 주식소유에 대한 정보도 신고의무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관련 금융기관에 대하여도 협조의무를 부여하고 역외탈세자나 법인의 내부고발자의 보호나 보상에 대하여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나 탈세에 대해 강력한 형사법적 처벌조항을 마련하고 큰 규모의 탈세에 대해 징역형을 의무화하는 양형규정을 제정함으로써 탈세의 관행과 역사에서 단절하겠다는 의지를 우리 사회에서 세우는 일이다. 다른 어떤 규정보다도 이러한 제도적 요소가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국회는 경제 및 정치권력과 담합한 법원이 판결에서 피할 수 없도록 명백한 내용을 담은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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