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가서 절을 했던 흥륜사 입구, 남천내를 지나 첨성대, 반월성을 뒤로 하고 다시 보문호를 향한다. 30년전 유년기의 꿈을 키웠던 경주중, 고등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이제 화랑의 후예답게 힘을 낼 때이다.
분황사 예불소리를 들으며 단풍길을 신나게 뛰어 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배가 아프기 시작한다.
평소에 아프던 왼쪽도 아프지만 오른쪽도 아프고 온통 아프다. 숨을 못 쉴 정도이다.
숨도 가쁘다. 속도를 줄여봐도 안 된다. 참는 데는 자신 있으니 참아보자! 그래도 쉴 수는 없다. 다리도 아프다. 오르막은 자신있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오르막에서 계속 추월당하다니…. 그래도 하는 수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준비해 뒀던 진통제를 먹어볼까 하다가 먹지 않는다. 자칫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아침에 만났던 서울 사람이 사타구니에 와세린을 바르라고 했을 때 나는 바르지 않았다.
옷에 스쳐 피가 나고 아프다면 그 아픔을 느끼고 뛰겠다고…. 그래야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죽는 그 순간에도 정신을 차려 죽음을 알고 죽어야 하니까….
이제 보문입구 숯머리 30㎞ 반환점을 돌아 내리막길을 향한다.
내리막길도 오르막보다 더 힘들다. 길이 거꾸로 선다.
다행히 복통은 차츰 가라앉았지만 그 충격으로 온 몸이 다 아프다. 마음이 처지고 자신을 잃게 돼 조금씩 걸어도 본다. 34㎞ 지점에서 공중화장실이 보인다. 볼일도 없는데 화장실에 들어간다. 잠시라도 주루에서 피신하기 위해서…. 회수차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하나 둘씩 보인다. 길가에 앉은 사람도 있다. 목표기록은 간데 없고 포기냐, 완주냐 이게 문제다. 마의 35㎞ 지점을 지나 36㎞ 지점, 아직 6㎞나 남았다. 1㎞마다 안내표지판이 있어 아주 고마웠다. 쉬지 않고 뛰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지금의 목표는 1㎞만이라도 뛰고 쉬어야겠다는 것. 그래 앉아서 푹 쉬고 조금 걷고 1㎞는 뛰자. 37㎞, 38㎞, 39㎞ 지점…. 그 만나는 표지판마다 얼마나 반가웠던가. 40㎞ 지점 안내판을 안아 본다. 41㎞ 안내판에는 입을 맞추고 기뻐하니 일행들도 힘없이 공감을 표한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고…. 앉아서 쉴 때는 즐거운 표정, 걸을 때도 뛸 때도 표정관리는 확실히 했었지.
뛰다가 걸으면 뛸 때보다 다리가 더 아프고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아시려나 모르겠다.
드디어 결승점! 언제나 그랬듯이 힘을 내어 힘차게 뛴다. 그리고 신나는 표정. (4시간24분37초, 동아일보 경주오픈마라톤 풀코스 참가번호 4176번 백재환 참조)
잘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연습 부족, 연습량 대비 지나친 목표 설정, 초반 컨디션 호조로 인한 페이스조절 실패 등 시행착오로 어려움은 많았지만 앞으로 인생살이에 참고하고 시정하리라는 다짐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