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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6.02. (일)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75% 소득세율 위헌결정 내용 및 시사점

안창남 <강남대 교수>

1. 2012년12월29일 프랑스 헌법재판소(Conseil Constitutionnel)는 올랑드 정부가 제출한 2013년도 재정법률안(우리나라의 정부예산안)에 포함된 75% 소득세율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했다. 결정의 주된 이유는 75% 세율조항이 현행 프랑스 소득과세단위인 가족단위(foyer fiscal)가 아닌 개인단위를 기준으로 하고 있고 세부담 또한 가족단위보다 많아서, 이는 프랑스 헌법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 중 평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2. 미테랑 이후 17년만에 집권한 좌파정부는 재정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예외적 연대 기여(contribution exceptionnelle de solidarité)’라 불리는 소득세 75% 세율 규정을 마련했다. 이는 연간 소득 100만유로(약 14억원 상당) 이상 자에게 2년 동안만 한시적으로 적용하며, 적용대상자는 1,500명, 추가적인 예상 세수입은 약 3천억원 정도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부자증세의 영향 때문인지 프랑스 일부 부자들이 인근 벨기에로 주소나 국적을 옮기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유명 코미디언인 제라드 드파르디유(Gérard Depardieu)나 루이뷔통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어쩌면 같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고속열차로 1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브뤼셀에 거주하면서 실제 생활은 파리에서 한다 해도 그다지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굳이 높은 세금을 내면서 파리에 거주할 필요성이 적을지도 모르겠다.

 

3. 프랑스 소득세 과세단위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가족단위 과세방식이다. 즉 한 지붕 아래의 가족 구성원이 벌어들인 소득은 그 구성원들이 소비를 하므로 결국 담세자는 가족단위가 맞고 과세 자체도 가족단위로 하는 것이 공평에 합치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가장(家長) 혼자 1억원을 벌어 4인 가족을 부양하는 것이나 혼자 1억원을 벌어서 혼자 소비하는 것은 당연 다르게 과세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여, 전자의 경우 1억원을 4명의 가족 수로 나누고 난 뒤의 금액에 해당세율을 적용하면 1인당 세액이 산출되고 여기에 다시 4(가족 수)를 곱해 가족 전체의 소득세를 산출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1억원에 적용되는 세율을 곱해 납부할 세액이 산출된다. 따라서 1억원을 4명으로 나눈 금액에는 낮은 세율이 적용되고, 1억원에는 높은 세율이 적용된다. 초과누진세율구조이기 때문이다.

 

4. 이번에 문제가 된 75% 세율이 적용되는 자는 가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별로 100만유로 이상을 얻는 자에게 적용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부부가 각각 90만유로를 번 경우, 부부합계소득은 180만유로가 돼 75% 세율이 적용되는 100만유로를 넘었지만 이때는 75% 적용대상이 아니다. 그 이유는 각 개인마다 100만유로를 넘은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혼자 100만유로를 번 자는 이들 부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저하게 높은 세금을 부담하게 되므로,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부합산과세의 위헌결정(헌재 2002.8.29 선고 2001헌바 82)의 논리와 흡사하다. 그러나 ‘르 몽드’지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의 60%가 75% 소득세 세율에 찬성하고 있어서 올랑드 정부는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5. 결국 쟁점은 무엇인가? 국가재정운용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다. 현재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재정운용정책(적자, 균형, 흑자)을 펼 것인가의 선택 문제이다. 방법은 정부지출을 줄이든지 아니면 세입을 늘리든지 둘 중 하나이다. 프랑스의 경우에는 부자증세를 통해서 경제성장을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도 재정절벽(Fiscal cliff)을 벗어나기 위해 증세하는 것과 동일하다.

 

6. 이제 머지 않아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 그런데 2013년 예산안 편성과정을 보면 MB 정부와는 근본적인 사고의 차이를 느낀다. 복지예산의 증액에 대해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정부의 다른 부문의 정부지출을 줄이고 있다. 심지어 국방비까지 줄이는 것을 보면 얼마나 부자 감세의 폐해를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적극적인 부자 증세는 아니지만 비과세 및 감면규정의 축소 등을 통해 세입을 추가적으로 확보하고자 하는 점은  MB정부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자 측에서는 대통령 선거기간 중 130조원이 추가적으로 소요되는 복지정책을 발표했다. 매년 25조원 이상이 소요된다.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비과세나 감면조항을 모두 없앨 수는 없다. 법인세율 인상은 기업의 국제간 경쟁력 때문에 어려울 것이다. 부가가치세율 인상은 일반 서민에게 큰 부담이 된다. 재산세는 세율을 인상해도 세입이 미미하다. 결국 소득세율 인상뿐일 것이다. 미국이나 프랑스도 결국 소득세율 인상을 하지 않는가. 우리나라도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인상하고 이를 재원으로 복지정책을 해야 한다.

 

7. 한편, 프랑스 헌법재판소의 사전적 위헌법률 심사제도를 우리나라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2008년 7월에 개정된 프랑스 헌법은 헌법재판소가 사후적 위헌 법률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법률가의 입장에서 의미가 있는 것은 사전적심사제도일 것이다.

 

예를 들어 일부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은 종합부동산세법을 보자. 이를 국회 통과 전에 헌법재판소가 미리 심의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통과되고 시행된 뒤 문제가 될 경우 사후적으로 위헌 여부를 살펴보는 게 좋을까? 정부와 입법부 및 사법부의 권한에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사전적 심사제도가 좋을 듯하다. 그래야 납세자의 피해를 미리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을 할 때 우리나라도 한번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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