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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6.02. (일)

물가와 조세

성명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지 2개월 정도 경과했다. 대선이 끝나고 국정 수행을 위해 후보시절 약속했던 정책공약을 다듬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조직해 정책방향을 점검했던 기간까지 포함하면 4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여러 정책 현안들 가운데 복지와 증세에 대한 논란이 눈에 띤다. 복지수혜 확대를 골자로 하는 공약 실천을 위해서는 상당한 재원이 소요된다. 정부는 낭비요인을 축소해 재정지출을 효율화하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함으로써 추가재원을 확보해 증세없이도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각종 언론매체나 상당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증세 없는 복지 확대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하면서 현재까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증세없이 새 정부가 펼치고 있는 정책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이다. 정책의 지속가능성을 판정하는 데 긴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회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필자는 그런 시각에서 우리나라 조세체계상 물가가 조세수입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함으로써 증세논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조세체계를 살펴보면, 증세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과 실질적 의미에서의 증세는 서로 의미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그 사이의 간극에는 물가가 자리잡고 있다.

 

현행 조세체계를 변경없이 그대로 두는 경우, 우리는 증세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세법 개정 등을 통해 세수에 영향을 준 경우, 특히 세수의 명목규모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편된 경우라면 증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는 물가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숫자의 크기가 변했는지의 여부만을 판단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이다. 실질적 의미에서의 증세와는 상당한 정도의 온도차가 있을 수 있다. 일종의 신기루 현상이다. 이를 좀더 면밀하게 살펴보자.

 

먼저 유류세를 보자. 우리나라 유류세의 특징은 가격에 관계없이 리터당 일정금액이 세금으로 과세되는 종량세 구조를 갖고 있다. 휘발유는 1999년, 경유와 등유를 포함한 나머지 유종은 2007년에 정해진 세율이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간의 물가상승을 고려하면 명목세율은 그대로지만, 실질세율은 오히려 물가에 반비례해 하락했다. 명목상 세제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감세가 이뤄졌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기능적으로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감세가 이뤄졌다.

 

이는 유류세의 재정기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류세 세수비중은 여전히 높은 편이지만, 그 위상(세수비중)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 실질적 의미에서 감세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증세도, 감세도 아니라는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크게 괴리돼 있다.

 

이런 현상은 동일한 방식의 종량세 체계를 지닌 담배세에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담배소비세는 한때 지방세 세목 중 취득세(등록세)와 함께 세수 비중이 가장 높은 세목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세수 비중이 중간 수준에 접근할 정도로 위상이 크게 위축됐다. 세제를 바꾸지 않아 물가상승으로 인해 실질적 감세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한편 소득세는 이와 정반대이다. 각종 소득공제나 세율구간 등이 일정금액으로 고정돼 있다. 물가가 상승하면 명목소득도 증가한다. 가상적으로 실질소득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물가가 상승해 명목소득이 증가하면 상당수 소득자들의 소득세 과표가 증가해 소득세의 실질부담이 종전보다 증가한다. 일부 소득자들의 경우에는 과표구간이 상승해 소득세 부담 증가율이 더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소득세의 누진과세체계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소득세를 개편하지 않고 그대로 두더라도 물가가 상승하면 자동적으로 증세가 이뤄지는 물가세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듯이 세제를 개편하지 않아도 물가가 변동하면 일부 세목에서는 감세효과가 나타나고 다른 세목에서는 증세효과가 나타난다. 우리나라 조세체계 전체적으로는 물가상승시 감세보다는 증세효과를 지닌 세목의 세수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따라서 세제를 개편하지 않아도 일정한 범위내에서 실질적 증세효과가 나타난다. 경험적으로 세수탄성치가 1을 상회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새 정부가 이런 점에 주목해 ‘증세는 없다’라는 주장을 전개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부가가치세의 세율인상 등과 같은 추가적인 조치는 없다’라는 인식 하에 ‘증세는 없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세체계 전체를 놓고 보면 물가세 기능이 있기 때문에 세수확보 차원에서는 어느 정도 숨통을 열어줄 수 있다. 따라서 복지재원 확보 문제와 관련해 전부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는 재원확보 문제에 대한 우려를 다소 완화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된다.

 

다만 총세수규모 측면에서만 다행스러울 뿐이다. 세목별로는 증세와 감세가 비대칭적인 양상을 보일 것이기 때문에, 세목별 과세기능과 적정 세수규모를 적절하게 조정해주지 않는다면 조세체계 구성상의 기형적 변화를 초래해 조세의 가세 기능상 부작용을 오히려 심화시킬 수 있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증세는 없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세제개편을 주저하기 보다는 문제가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개혁하는 노력이 지속되길 기대한다.

 

※본면의 외부원고는 본지 편집방 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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