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정 의원, 수입가격 인하에도 소비자 혜택 없고 수입·유통업체 배만 불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농축수산물에 대한 할당관세 적용 품목을 늘렸으나, 정작 국내 유통과정에서 소비자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국민들이 수입가격 인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비자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할당관세를 적용했으나, 정부 세수만 축나고 수입사와 유통사 배만 불리는 등 외국산 농축수산물의 불공정 거래행위에 대한 감시·관리 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할당관세 적용 농축산물의 소비자가격 변화(2021~2024)
김현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18일 기획재정부와 관세청,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출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할당관세 적용 혜택은 2021년 174개 품목 1조1천220억원, 31개 농식품 2천367억원이었으나 △2022년 238개 품목 3조3천800억원, 67개 농식품 8천774억원 △2023년 254개 품목 2조3천400억원, 83개 농식품 6천250억원 등 지난 3년동안 농식품분야에만 1조7천391억원에 달했다.
2022년부터 농식품 할당관세를 그동안 적용하지 않던 민감 품목인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파, 감자 등에까지 크게 늘었으나 주요 농축산물 가격은 오히려 올랐거나 제자리 걸음을 했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렌지, 파인애플, 바나나, 망고, 감자, 양파, 대파 등 10개 민감 품목의 경우 2021년 대비 2024년 9월말 현재 가격이 내린 품목은 망고, 양파, 대파 3가지 뿐이었다.
2022년 7월 할당관세가 적용된 미국산 냉장 쇠고기는 수입가격을 23% 낮췄지만 소비자가격은 2021년보다 45%상승했다. 2023년에도 전년보다 3% 올랐다. 10개 기준 오렌지 소비자가격은 2021년 1만1천850원에서 2024년 1만6천460원까지 올랐다.
2022년과 2023년 할당관세가 적용돼 수입가격 인하율이 18.4%~20%에 이르렀지만 외국산 삼겹살 100g당 소비자가격은 2022년 1천461원으로 12%, 2023년 1천496원으로 2% 상승했다. 2024년 들어서야 1천454원으로 3% 떨어지는데 그쳤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연속으로 할당관세가 적용된 닭고기는 수입가격인하율이 16.7%~21%에 달했으나 1kg당 소비자가격은 2022년 4%오른 5천656원, 2023년 8% 상승한 6천96원으로 나타났다. 올들어서야 5천871원으로 소폭 하락했다.
■할당관세 적용 주요 농축산물 수입가격 인하율과 소비자값 변동율 비교(단위: 원)
국내 주요 축산물 수입 유통업체 10곳의 2022년 매출총이익은 6천41억원으로 2021년보다 28% 줄었지만, 2023년들어 6천41억원으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실에서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를 상대로 2022년 하반기에 적용한 할당관세가 수입·유통업체의 경영에 도움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이 기간동안 식품대기업, 대형마트, 농축산물 수입업체 등은 경영실적이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료품업종 상위 35개 기업은 2023년 매출액이 41조9천622억원으로 전년보다 3.2% 늘었고, 순이익은 1조6천959억원으로 31% 증가했다.
지난해 가락시장 5개 도매법인 영업이익률은 19%~24%로 나타나 국내 도매 및 상품 중개업의 평균 영업이익률 3.9%보다 훨씬 높았다. 바나나 등을 수입하는 돌 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연결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10배 이상 늘어난 약 337억원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유통업 매출은 대형마트 0.5%, 백화점 2.2%, 편의점 8.1%, 준대규모 점포 3.7% 등 3.7% 늘었고, 온라인 매출도 9.0% 증가했다. 전체 상품 매출의 34.8%를 차지한 식품 매출은 전년보다 11.4% 늘었다.
■주요 축산물 수입·유통업체 연도별 매출총이익(단위 : 억원)
김 의원은 “농수축산물 수입·유통기업들과 식품제조기업들의 지난해 경영여건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나, 농축산물에 대한 정부의 할당관세 0% 적용이 생산자와 소비자보다 먹거리 수입·유통·제조 기업들의 배만 불렸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달 28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2000년이래 농산물 무역개방도가 증가했지만 국제 가격·운송비, 환율, 과점적 시장구조, 기후, 국내 물류·유통 등으로 인해 농산물 소비자물가지수는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면서 국내 생산량과 자급률이 물가에 대해 역(-)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외국산 농축산물 가격이 수입가격보다 국내산 유사 품목의 가격에 맞춰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시장개방 확대가 국내 생산기반 위축을 유발해 농축산물 물가 불안을 장기화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4월 농산물 가격 안정화 방안으로 수입개방 확대를 제시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주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정부는 WTO나 FTA보다 더 많이 국내 농축산물 시장을 열어젖힐 수 있음을 보여 줬다”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낙농품, 바나나. 오렌지, 파인애플, 망고, 자몽, 감자, 양파, 대파 등 민감한 품목에 무관세를 매겨 가뜩이나 어려운 농가경제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또한 “공정위는 과거 수입자유화 이후에도 수입 과일가격을 내리지 않는 수입·유통업체들을 상대로 가격담합에 따른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며, “정부가 남발한 할당관세가 식품 수입·유통 기업들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나왔음에도 공정위는 애써 눈감고 있는 듯 하다”고 질타했다.
2022년 이후 할당관세 적용 품목에 대한 부당 공동행위와 관련해 공정위는 2022년 5월 16개 육계 신선육 판매사업자의 가격 결정·유지에 관한 부당 공동행위에 대해 고발·과징금·시정명령을 조치했다.
그해 6월에는 9개 토종닭 신선육 판매사업자의 부당 생산·출고 제한 행위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리는 등 조치실적은 2건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의식주·생필품 등 민생 밀접 분야의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특정 농축산물에 대한 담합 행위 조사의 진행 현황이나 향후 계획 등이 공개되면 증거인멸 우려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