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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세

[특별인터뷰]제36회 납세자의 날
대통령표창 영예안은 김종규 공인회계사·세무사

개인회계사무소 납세실적 30억 '진기록'


지난 3월4일 제36회 납세자의 날에 모범납세자로 대통령표창을 받은 김종규(金鍾圭) 공인회계사(세무사)의 사무소를 찾았을 땐 법인 세무조정 열기로 사무소 분위기는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개인 회계사로서 소득세만도 17억원을 납부해 세무대리업계 부러움을 받으면서 전무후무할듯한 진기록을 세운 김종규 회계사는 아직 수상의 영광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서울 서초동 서초프라자 빌딩의 10여평 남짓한 그의 사무소에서 그가 세무대리업계 최고의 모범납세자가 되기까지 얘기를 들어봤다.

약력
△'37년 충남 아산生, 국학대 경상학과, 건대행정대학원 세무행정학과 졸업△공인회계사 시험('65년) 세무사시험 합격('66년) 녹조근정훈장('80년) △김천·북대구·마포·개포·방산서장 △국세청 감사과장 △조사3과장 △심사2과장 △중부청 간세국장 △재정경제부 국세심판소 조사관(부이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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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평의 작은 회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종규 공인회계사·세무사·경영지도사는 1평당 한해 1억원의 세금을 낸 모범납세자이다. 대통령표창 수상의 영예를 안은 김종규씨가 자신의 사무소에서 포즈를 취했다.

식안업이자 인지산업으로 불리우는 개인회계사무소가 무려 3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납부해 화제가 됐다. 화제의 주인공은 김종규 공인회계사.

16평의 공명회계사무소 면적을 기준으로 환산한다면 1평당 2억원의 세금을 낸 셈이다. 물론 '99·2000년 2년간의 납세실적이지만 이는 세무대리업계에서 전무후무한 진기록으로 꼽힌다.

이같은 진기록으로 김종규 회계사는 지난 4일 제36회 납세자의 날에 모범납세자로 대통령표창의 영예를 안았다. 세금 납부액이 엄청난 규모인데도 “대통령표창에 그치는 게 아쉽지 않았느냐?”는 기자 질문에 김 회계사는 손사래를 내저으며 “이만한 영광이 어디 있겠느냐?”며 성실납세로 나라살림에 작게나마 기여했다는 점에서 훈장을 받은 것 이상의 보람을 만끽하고 있다며 아직도 수상 당시 설레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소감을 밝혔다.

직원 6명의 개인회계사무소가 초대형 제조법인도 부러워할 정도의 세금을 내 세무대리업계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진기록을 만든 사건(?)의 이면에는 30년 기간 동안 `준비된 세무대리인'으로서 철처히 살아온 그의 인생역정이 숨겨져 있고 모범납세자 표창은 그 것이 고스란히 배어 녹아 나온 분신같은 상징이다. 어느날 갑자기 쌓은 사상누각이 아닌 늘 유비무환과 자기계발로 이뤄낸 금자탑인 셈이다. 지난 '94년 국세심판소를 끝으로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하고 그해 공명회계사무소를 개업했다. 개업연륜은 올해로 7년으로 결코 길지 않은 기간 동안에 이같은 진기록을 세우게 된 데는 지난 '62년 9급 공무원으로 세정과 인연을 맺은 이후 지난 '94년 공직생활을 마감하기까지 32년 남짓 기간 동안 국세공무원으로서 그가 걸어온 궤적을 되돌아 보면 수긍이 가고도 남는다.

김종규 공인회계사의 닉네임은 `독일병정', `나폴레옹' 등등 여러 가지이다. 작은 키에 강단스런 외모를 가진데다 매사 업무에 임할 때면 늘 자신감있고 명쾌하게 처리할 뿐만 아니라 일단 맡겨진 책무라면 어떤 난관에 부딪치더라도 해내고야마는 직성 때문이다.

그가 국세행정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개발연대 초입인 '62.11월. 고교졸업후 국토개발 요원으로 선발돼 세무공무원 교육원 2기생으로 입교, 수료후 첫 임지인 영등포세무서에서 세정역군으로 출발했다. 당시 金 공인회계사와 동기생으로는 황재성씨(前 서울청장), 박래훈씨(前 직세국장), 이영우씨(前 서울청 조사2국장), 양종민씨(前 서울청 간세국장) 등등 국세행정에 초석을 놓으며 오늘의 세정을 만들어 낸 사실상의 원년 멤버들이다.

63년 사세청(國稅廳 前身) 9급 세무공무원으로 정식 임용됐으나 그는 단순한 공무원에 머무르지 않고 프로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주경야독에 들어간 것. 그가 공인회계사 준비를 하게 된 동기에 대해 “결혼 직후 어느날 장인어른(임동권 現 중앙대 명예교수)이 공인회계사 시험을 볼 것을 권유해서 알게 됐고, 시험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장래 설계 차원이었지요”라며 당시를 회고하고 파안 대소했다. 도전 첫 해에 덜컥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 '65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부여받은 것도 흔치 않은 기록. 이듬해 그는 또다시 세무사시험에 합격, 세무회계전문가로서 그랜드슬램을 거머쥐었다.

이후 그는 비약적인 국세행정 조직의 확대와 함께 6급 주무 승진후 3년이란 최단기간에 사무관 승진시험에 합격, 임관해 국세청 人事史에 또 하나의 신기록을 남겼고, 그 어렵다는 서기관 승진도 불과 6년만에 이룬 그는 신기록제조기로 소문날 정도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만큼 잘 쪼개어 쓰느냐가 성공여부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는 생활철학을 지닌 그는 술· 담배는 아예 배우지도 못했다고 한다. 체질탓 때문. 당시 공직사회 정서상 술·담배를 하지 못한다는 건 자칫 소외되기 마련이었지만 그는 열정을 다해 매끄럽게 업무를 처리하는 역량과 인간적 친화력을 발휘, 승승장구했다.

그의 성공적인 공직생활 과정에서의 일화가 있다.

당시 지방세무서장을 하다 본청 과장으로 입성하려면 5~6년여 기간 동안 지방 관서장을 여러 곳을 거치고도 행운(?)이 뒤따라야 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김천서장을 거쳐 북대구서장을 맡고 있던 김종규 서기관은 지방서장 2년만에 요직인 본청 감사과장으로 발탁, 파격적으로 영전됐다. 감사과장 적임자를 찾고 있던 안무혁 국세청장이 여론동향을 파악하고 김종규 서장을 전격 발탁한 것.

세청 내에서 그의 업무 성실성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평판이 나 있는데다 나홀로 실력을 연마해 나가는 자기관리에 투철한 관리자라는 입소문은 인사권자인 청장에게까지 알려질 정도였다는 게 당시 함께 근무했던 주변사람들의 한결같은 회고담이다.

“본청 감사과장 발령을 받아 서울로 상경하던 날 대구청 간부들과 직원들이 대구역에까지 나와 전송해 주던 모습이 가장 감회로운 추억이었다”는 그의 회고에서 관리자로서 `인간 김종규'씨의 한 단면이 읽혀진다. 이후에도 그는 김수학·고재일 청장의 총애(?)를 받으며 본청 스탭라인 및 일선 관서장으로서 세정 발전에 열정을 다해왔다.

바쁜 공직생활 중에도 대학을 마칠 정도로 학구파이기도 한 그는 사무관 시절인 70년대에 이미 근래 들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富의 세습문제를 개탄하고 세제·세정상의 문제점을 연구, 대책방안을 마련할 정도로 慧眼을 지닌 인물. 또 지금은 누구나에게 익숙한 용어이지만 80년대 후반 그는 벌써부터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된 여러 형태의 자본거래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회계처리와 세무상의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연구와 실력연마에 힘입어 공명회계사무소 개업후 구조조정과 관련한 기업들의 세무자문 문제에서는 타의 주종을 불허할 정도로 전문가로서 탄탄한 명성을 얻고 있다.

이번 납세자의 날에 영예의 대통령상을 수상하게 된 공적내용 가운데 `지난 32년 동안 세무공무원으로서 `세원개발', `지하경제 척결', `고액탈세조사' 등등으로 세정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바 있음'이라는 대목은 김종규 공인회계사의 조세전문가로서 폭넓은 역량을 엿보이게 하는 대목이다.

그가 운영하는 攻明회계사무소의 상호는 공격적이고 투명하게 의뢰인들의 업무를 처리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
`전 직원이 실무경험과 전문지식을 토대로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적부심청구, 이의신청, 심사청구, 심판청구를 수행해 납세자의 침해된 권리를 구제해 주고 있다”는 경영방침에서 나타나듯 공명의 최강점은 각종 불복청구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배경에는 김 회계사가 국세청 심사·간사·조사과장을 거친데다 특히 국세심판원 조사관을 지낸 이력이 뒷받침해 준다. 각 직원들에게 전문분야별로 업무 배정을 하고 있는 그는 의뢰자의 불복청구서는 항상 새벽 조용한 시간에 출근해 직접 작성하고 있다. `납세자의 권리구제를 위해서는 자신의 한치의 실수도 용납치 않는다'는 신념 때문이다.

만면에 미소를 잃지 않아 60대 중반인데도 불구하고 40대 홍안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게 행운이 뒤따른 때문으로 늘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모습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조세전문가 인생 36년을 맞은 그의 가족 중 막내딸이 서울시내 某세무서에서 세무조사관보로 근무하고 있어 2대째 부녀 `국세공무원'이란 가업(?)을 이어 받은 국세가족인 셈이다.

역사적 사건인 고액 납세실적 기록 달성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3~4년 정도 회계사무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귀띔하는 공명회계사무소의 김종규 공인회계사.

공직자로서 지난 '80년 녹조근정훈장을 수훈받은 것과 세무대리인으로서 이번 영예의 대통령표창을 수상한 것은 그의 인생역정사에 값진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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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0.12.28 서울지방국세청 지도과장 재직시 지하경제 척결과 고액 탈세자 조사를 비롯, 세무공무원 기강 확립과 친절봉사 세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수학 국세청장(왼쪽)으로부터 김종규(오른쪽) 공인회계사가 녹조근정훈장을 수훈받는 모습.

■김종규 공인회계사의 납세실적
(단위:백만원)

연  도

수입금액

소득금액

부가세

소득세

주민세

1999년 귀속

2,248

1,048

220

405

40

2000년 귀속

5,914

2,797

535

1,103

110

2001년 중간예납

(세)2,048 (주)1,776

713

153

278

27

합  계

10,210

4,558

908

1,786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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