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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9.21. (토)

내국세

[납세자의 날 현상공모 주부세금수기 입상작]-동상수상작

고마우신 납세자보호담당관님-정연례(해남군 해남읍 성동리)


소유권분할등기한 것에 증여세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걱정마세요
세금면제통지서…눈물이 앞을 가려

지난 한해가 저물어 가는 초겨울 아픈 몸을 이끌고 밤늦게까지 들녁에서 날품팔이를 겨우 마치고 세들어 사는 단칸방에 돌아와 보니, 혼자 살고 있는 방문 앞에는 세무서에서 보내 온 낯선 우편물 하나가 놓여져 있어 주워보니 생각지도 않은 증여세 500만원의 세금고지서가 나온 것이다.

세금은 커녕 당장에 생활비 마련도 힘들어서 지금은 홀로 머나먼 시골로 내려와 시골 농장에서 날품팔이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 서로 연락도 못하고 각자가 살길을 찾아 지내고 있는 형편이다.

십여년 전 남편의 사업이 실패하여 가산은 은행 부채로 다 넘어가고, 남편과는 결국 이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식들까지도 다니던 학업을 중단하고 생업을 찾아 각자 나서게 되었으며, 그렇게 흩어져 살다가 큰아들 성환이가 그동안 저축해서 모은 돈이 조금 있으니 가족이 함께 지낼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라고 해서 삼년전 상무지구에 조그만 아파트 하나를 큰아들 명의로 분양을 받았었다.

막상 아파트를 분양받았지만 매월 납부해야 할 분양대금 마련이 결코 쉽지 않았다. 둘째인 큰딸 경화가 조그만 공장에 다니면서 받은 월급을 모은 돈과 둘째딸 경숙이가 안경점 점원으로 근무(지금은 그나마 폐결핵으로 병원에 입원하고 있음)하면서 받은 월급, 그리고 지금은 군대에 입대하여 집에 없는 막둥이 성욱이가 태권도 도장에 사범으로 다니면서 다달이 받은 돈을 모아 조금씩 갚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중에 형제들 사이에 소유권 때문에 다툴 것 같아 얘들과 상의도 하지 않고, 나는 법무사와 상의하여 아이들 명의로 소유권을 지분으로 나누어 이전등기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분으로 소유권이전등기한 것이 증여에 해당되어 증여세가 500만원이나 나온 것이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양 받은 아파트에서는 살 형편이 못 되어 보증금 삼천만원의 전세로 내어주고 지금은 먹고 살기 위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형편에 증여세 500만원을 마련해서 납부할 사람은 가족 중에 아무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주위 친척이나 아는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도 물론 없었다.

세무서에 가서 아무리 사정을 하여도 "법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는 대답 뿐이었다. 수소문하던 끝에 납세자보호담당관을 찾아가서 사정 얘기를 하면 세금에 대한 고충을 들어준다는 말을 듣고, 광주 쌍촌동에 있는 지방국세청을 찾아갔다. 남편의 사업이 망하여 세금 체납으로 평소에는 세무공무원은 무서운 사람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납세자보호담당관이란 분을 두려워서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납세자보호담당관은 시종 미소 띤 얼굴로 제 형편을 자기일처럼 자세히 다 듣고 난 다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만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잠시만 기다리고 계시면 검토하여 곧 댁으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하면서 제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그날이후 농장 날품팔이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도 납세자보호담당관의 친절한 모습만이 눈에 어른거렸으며,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도 보였다. 그리고 오직 국세청에서 세금문제가 해결되었다는 통지서가 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지금 형편에 500만원은 꿈에도 만져볼 수 없는 너무도 큰 액수의 돈이었기 때문에 자나깨나 희망은 오로지 그것 뿐이었다.

한달 가량 지났을 무렵 세무서로부터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통지를 받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지금쯤 군대에서 고생하고 있으나 남들처럼 면회 한 번 가보지 못한 아들, 시집도 못 가고 공장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있을 큰딸, 그리고 병상에서 돌보아 주는 사람도 없이 외롭게 누워 있을 둘째딸의 모습이 떠오르고, 신장이 나쁘지만 돈 때문에 병원에도 갈 수 없는 나의 처지가 마냥 서러워,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한참 동안 소리없이 울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평생 동안 납세자보호담당관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였다.

당시 생각 같아서는 당장 청장님을 찾아뵙고 큰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날이 새면 우선 당장 품팔이를 나가야 하는 나의 형편을 그저 원망만 할 뿐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게 살아오면서 이렇게 이웃으로부터 고마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힘들지만 삶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있었다.

고마우신 납세자보호담당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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