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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9.21. (토)

내국세

창간 37년 각계축하메시지 - 국세심판원장 한정기

"어려운 여건에도 항상 正道 고집"



국세심판원장 한정기

창간이래 우리 나라 세제와 세정의 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해 온 한국세정신문의 37번째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성글고 어설픈 것 같지만 아무리 작은 것도 빠져나갈 수 없는 天網과도 같이 세정가의 크고 작은 소식과 독자들의 바람을 놓치지 않고, 또 바르고 옳은 것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오늘날 한국세정신문을 가장 권위있는 조세전문지의 하나로 터 잡을 수 있게 한 밑거름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세정당국과 납세자간 항상 믿을 수 있고 사랑받는 전달자로서의 貴 신문의 기능과 역할을 기대합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에서 있었던 옛 고사를 하나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당시의 세도가 최저가 태사 백에게 "실록에다 제장공이 학질로 죽었다고 쓰오"라 명하지만 백은 이에 복종하지 않고 '여름 5월 올해일에 최저는 그 임금 광을 죽였다'고 썼다. 최저는 이를 보고 대노하여 백을 죽였다.

백의 다음 동생 중도, 그리고 그 다음 동생 숙도 역시 그 형백이 쓴 것과 똑같이 기록했다가 최저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 밑의 동생 계도 죽은 형들이 쓴 것과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가 그 기록을 보고 기가 막혀 계에게 "너의 형 셋이 다 죽었는데도 너는 생명이 아깝지 않느냐? 내가 시키는 대로 쓰면 너를 살려주마" 이에 계는 "사실을 바른대로 쓰는 것이 역사를 맡은 사람의 직분입니다. 자기 직분을 잃고 사느니 보다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태사 계가 그 기록을 집어들고 史館 가까이 돌아갔을 때 저편에서 오는 남사씨와 서로 만났다. 계가 "무슨 일로 이렇게 바삐 오시오?"하고 물으니, 남사씨는 "난 그대 형제가 다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혹 이번 5월 올해 사건이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까 염려되어 竹簡을 가지고 오는 길이요"라고 답했다.

지난 37년간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한결같이 바른 길을 걸어온 한국세정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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