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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9.22. (일)

기타

[寸鐵活仁]신문을 기다리는 마음은

-몽매에서의 탈출이다



장재철(張在鐵) 시인
本紙 論設委員

사람들은 신문 배달이 늦어진다면 짜증을 낸다. 그만큼 세상사람들은 신문을 즐기며 기다린다.

그러면서 신문을 펴들고 욕을 하는 수가 있다. 왜 그럴까?

속담에 `안 보면 보고싶고 보면 이 갈린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신문을 의지하고 기다리는 심정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신문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기대이고 악담은 그것이 어긋났을 때의 불만이다.

그런데 요즘 신문은 솔직히 말해서 편파적이고 선동적인 일면이 없지 않다. 나라 전체를 멍들게 한 사건을 애써 축소보도하고 말단공무원(특히 경찰관)의 사소한 실수(에러)를 針小棒大 보도하는 따위…….

지난 한때 시골에서까지 떠도는 말이 `신문 一面 보지말고', `二面 알아보고', `三面 물어보고', `四面 가서보라'는 위트(우스개)가 있었는데 여기에 주석을 달면 신문 一面(정치기사)을 보면 괜히 속만 상하니 차라리 안 보는 게 정신위생상 좋다는 것이고, 경제·사회면은 `직접 물어보고 알아보고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지 말라'는 뜻(寓意)이다.

신문의 상품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요즘 일부신문에게 社會輿論을 生成·主導하고 `사람이 갈 바른길'을 닦아주는 일까지를 바랄순 없다손 치더라도 온통 `상품광고'로 뒤범벅이 된 중앙 有力紙를 들춰보는 기분은 마치 무슨 큰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썩 유쾌한 것은 아니다.

만약 언론이 경영상의 이유로 독립성의 침해를 자초하는 일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제 목숨 내어주고 한끼 밥을 얻어먹는 愚를 범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세상에는 벌 받지 않는 죄인이 적지 않다. 더구나 이른바 상류지도층 인사 중에 그 공인적 행동이나 사생활에 있어 國法의 제재를 교묘히 포탈하고 반사회적 반도덕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일이 있으니 이럴 때 그에 대한 사회적 제재를 가하고 반성을 촉구하여 국가사회의 정화에 공헌함도 신문의 고유한 기능이고 힘이다.

사회는 신문에 대하여 많은 것을 기대한다. 국민은 거기서 정치와 경제를 알고싶어 하고 문학과 예술과 과학까지를 신문을 통해서 배우고자 한다.

그래서 신문을 가리켜 `졸업없는 학교'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 신문은 보다 광범위한 학생(독자)을 상대로 헤아릴 수없는 많은 일상적인 문제를 풀어주고 밝혀준다.

학교가 `원리'를 말할 때 신문은 `실제'를 가르치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설파하고 보다 밝은 내일을 전망하는 慧眼을 가져야 한다 해도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는 억지나 과욕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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