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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11.01. (금)

내국세

[연재]격동기 국세청 30년, 담담히 꺼내본 일기장(5)

'낮은 납세의식…이중근로소득 자료 처리 진땀'

첫 공무해외여행,자존감을 회복하다

신정철 과장님과 박정구(행시 10회) 소비세계장과 함께 먼저 뉴욕에 도착하여 관광 일정을 소화하고 미국 국세청(I.R.S)이 있는 워싱턴DC로 갔다. 한국 대사관의 서대원 참사관(후에 국정원 제1차장 역임)에게 연락하였더니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자기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 우리가 오지 않아 미국 국세청과의 인터뷰 일정을 취소해 버렸노라고 하였다. 낭패였다. 사정사정하여 겨우 일정을 다시 잡았다. 미국 국세청에 당도하고 보니 잠시 접견만을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오전 오후 2시간씩 시간이 잡혀있었다. 오전에 두분의 관계관이 나왔다. 우리는 말도 서툴고 질문할 내용도 별로 준비를 못하여 너무 당황했다. 서 참사관이 재정 일반에 관하여 앞부분을 얼마간 커버해 주었다. 나는 다행히 그 전날 호텔에서 미국 정부간행물센터(G.P.O)에서 구입한 미국 소비세법에 관한 책자를 통해 간략한 노트 정리를 해두었는데 이 노트에 메모해 놓은 것을 꺼내 우리나라 소비세제도와 미국의 소비세(excise tax)제도를 대조해 가며 과세대상 물품과 세율 등을 비교 질문하면서 일부러 신 과장님께 여쭈어 보고 다시 통역하는 모양으로 모닝세션을 마쳤다. 신 과장님은 나에게 참으로 고마워 했다. 서참사관도 그제서야 우리에 대한 서운한 생각을 접고 워싱턴 근교 맛있는 레스토랑에서 우리를 대접해 주었다. 오후에는 소비세조사와 범칙처리와 관련하여 조사대상의 선정, 조사업무량, 조사방법 등에 관한 질문을 하고 답변을 들었다.
미 국세청 일정을 마치고 나니 날아갈듯이 긴장이 풀렸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하고 귀로에 일본, 대만 국세청을 들러 귀국하였다. 김수학 국세청장은 공무여행을 갔다 오면 직원조회 때 여행 소감을 발표하라고 했는데 그 첫번째 순서가 우리였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잘 써서 신 과장님께 드렸는데 전 직원 조회시 신 과장님은 발표를 아주 멋지게 하였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의 절망감 속에서 나는 서서히 자존감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스스로 내 마음을 위로하면서 다음 인사를 기대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미국 유학시절 1980년 6월 룸메이트인 김종상씨(좌측, 前 부산지방국세청장)와 백악관 앞에서 기념촬영한 모습.

 



4. 성남세무서 소득세과장 시절

79년 4월 성남세무서 소득세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이번에도 서울시내 세무서 전입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세청은 앞으로 국세청의 고급 간부로 성장할 행시 출신 젊은 엘리트들에 대하여 이토록 무관심하고 홀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또 한번 좌절의 쓴 잔을 마셔야만 했다. 이러다 보니 국세청에 들어온 젊은 행시 출신들이 견디지 못하고 얼마 안 되어 타 부처로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젊은 행시출신들이 국세청을 떠나는 이유

500여명이 넘는 국세청 사무관 중에서 행시출신이라야 매년 5~6명 정도인데, 이 고급인력을 계획적으로 보직 관리를 안함으로 인하여 국세청이 입는 손해가 얼마나 되는지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참으로 탄식할 일이었다.
알다시피 정부는 70년대 후반 청계천변 빈민들을 강제로 철거하여 집단 이주시켰는데, 이들 집단 이주민들이 주축이 되어 형성된 도시가 바로 성남시였다. 그전까지 성남시는 서울 성동세무서 성남지서 관할로 되어 있었으나 이번 인사이동과 더불어 처음으로 1급지 세무서가 되어 서기관 서장과 사무관 과장자리가 생겼다.
우리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이 지역에 세무행정은 부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영세사업자가 많았고 행정력도 미치지 않아 세금을 내본 납세자가 거의 없었다.
소득세과는 소득1계, 2계와 재산세제로 이루어졌는데 직원이 30명 정도 되었다.

적은 금액이라도 세금내는 버릇(?)부터 길러주어야

5월 소득세 확정신고때는 직원들이 일일이 납세자의 신고서 작성을 대행해 주었는데 한 달 내내 세무서가 북새통이었다.
9월말과 11월말 두 번의 중간예납 납기 때는 납기내 납부실적을 올리느라 직원들이 진땀을 흘렸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우리 세무서 실적은 서울청 내에서 꼴찌였다. 세금을 내 본 경험이 없는 납세자들은 이번에도 안내고 있으면 이전처럼 결손처분할 것으로 알고 안 내고 버텼다. 지방청에서도 사정을 알고 어느 정도 이해해 주었다.

제대로 처리하기 힘든 과세 자료들

재산세계는 사실상 재산세과로 독립해야 할 정도로 처리해야 할 과세자료가 많았다. 과장의 주된 결재는 재산세계 소관업무에 속한 것이었다. 한꺼번에 백여건의 결의서를 모아서 결재를 올리기 때문에 차분히 검토할 겨를이 없었다.
소득세 확정신고 후에 본청 전산실에서 내려오는 소득합산Ⅰ,Ⅱ,Ⅲ표와 이중 근로소득자료 처리 업무는 끝이 없었고, 재산제세 자료 처리도 금액이 큰 것 외에는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여기에 직원들은 체납세금 정리업무까지 겹쳐 있어 잠시도 영일이 없었다. 그래도 세금 내주는 사업자와 납세자가 있었기에 세수 목표가 달성되고 세무서 운영도 차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납세자의 납세의식 수준도 날이 갈수록 향상되어 갔다.
<계속> -매주 月·木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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