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조사서 읽어보지 않고 회의 참석?…내부 자성·비판 수용
조세심판원, 임명은 까다롭게 해촉은 자유롭게…법령·규정 개정 추진
명망있고 전문성 갖춘 名비상임심판관, 6년→최장 12년까지 임기 연장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심사대상기관 근무자, 비상임심판관 위촉 금지
한번 위촉되면 최소 3년, 최장 6년까지 활동이 가능한 조세심판원 비상임심판관의 임기를 최장 12년으로 늘리되, 임기 중이라도 직무태만 등 업무 수행에 부적합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해촉할 수 있도록 국세기본법 개정작업이 추진된다.
또한 외형 100억원 이상 법무법인·회계법인, 50억원 이상 세무법인 등 취업심사대상기관에 근무 중인 전문자격사와 함께 심판원 퇴직 후 3년 미만 공직자, 변호사 등 징계처분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자격사 등은 비상임심판관에 위촉할 수 없다.
조세심판원이 지난 20일 발표한 납세자 권리보호 강화방안에는 비상임 조세심판관의 임기를 늘리는 한편, 임기 중이라도 언제든지 해촉할 수 있도록 일명 ‘철밥통’을 깨뜨리기 위한 법령 개정작업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조세심판원이 위촉한 비상임 조세심판관은 총 35명으로, 직역별로는 교수 18명, 변호사 8명, 전직공무원 9명 등이다.
이들 비상임 조세심판관의 역할은 공직자인 상임심판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판관 회의시 4명의 상임·비상임심판관이 참석하게 되는데, 납세자가 제기한 심판청구의 ‘인용 또는 기각’을 결정하는 데 있어 상임심판관과 동일한 영향력을 가진다.
일례로 상임심판관 2명이 기각 또는 인용 의사를 보여도 비상임심판관 2명이 이에 반대한다면 ‘가부 동수’로 인해 의결이 보류되며, 반대로 비상임심판관 1명이 상임심판관 2명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면 의결되는 등 표의 등가성이 확실히 보장돼 있다.
문제는 심판청구 사건의 심리 과정에서 이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비상임심판관이 사건조사서조차 읽어보지 않고 회의에 참석할 경우, 납세자의 권리가 크게 침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실제로 조세심판원내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모 비상임심판관의 경우 사건조사서를 읽어보지 않고 회의에 참석했거나, 과세관청과 납세자 간의 쟁점을 알지 못해 엉뚱한 질문만 의견진술인에게 던지는 등 심판회의 자체를 형해화시켰다는 지적이 있었다.
엉뚱한 질문만 늘어놓는 비상임심판관의 모습을 지켜본 납세자나 과세관청 입장에선 조세심판원의 결정서가 원래 의도와 다르게 나올 경우 과연 납득할 수 있겠느냐는 조세심판원 내부의 자성 마저 제기되고 있다.
결국 직무태만 등 비상임심판관으로서 업무수행에 부적합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해촉이 가능해야 하나, 현행 국세기본법에서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 △장기(長期)의 심신 쇠약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된 경우 등에 해당하지 않으면, 의사에 반해 면직되거나 해촉할 수 없다.
조세심판원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약화시키고, 절실한 납세자에게는 절망을 안기는 등 공부 안 하는 비상임심판관을 최소 3년간 고스란히 지켜봐야 하는 셈이다.
결국 조세심판원이 작심하고 상임·비상임심판관의 신분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국세기본법 제67조5항 각 호의 개정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심판관 회의 참석시 사건조사서를 사전에 충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비상임심판관의 태도 등이 조세심판관 또는 심판조사관들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될 경우 심판원내 인사심의위 심의를 거쳐 해촉할 계획이다.
다만 비상임심판관의 임기 등은 세법 개정 사항인 만큼 내년 1월경에야 최종 결과가 도출될 전망이다.
업무 수행에 부적합하거나 심판결정의 공정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비상임심판관을 아예 처음부터 위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결격사유도 신설한다.
조세심판원은 외형 100억원 이상 법무법인·회계법인, 50억원 이상 세무법인 등 취업심사대상기관에 근무하는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을 비상임심판관으로 위촉할 수 없도록 법령 개정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조세심판원 퇴직 후 3년이 지나지 않았거나, 변호사 등 징계처분을 받고 5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도 비상임심판관에 위촉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심판 공정성을 제고할 계획이다.
이들 모두 법령 개정이 필요하나, 조세심판원은 비상임심판관 인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해 오는 5월 인사심의위를 신설하기로 했으며, 심판원 운영규정은 이미 개정을 완료했다.
명망 있고 세법지식이 높은 비상임심판관을 조세심판원에 붙들기 위한 법령 개정작업도 추진된다.
현행 국세기본법 제67조 5항에서는 상임·비상임조세심판관의 임기는 3년으로 하고 각각 한 차례만 중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세심판관으로 위촉되면 평생에 걸쳐 6년만 활동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납세자의 재산권과 처분청의 과세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세심판관을 아무나 쉽게 위촉할 수도 없다.
더욱이 심판관 회의에서 상임심판관 또는 심판조사관 등이 몰랐던 각종 예규·판례 등을 제시하며 폭넓은 사건심리를 이끄는 비상임심판관의 경우 두고두고 심판원에 붙잡고 싶으나 중임제한 탓에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이에 조세심판원은 심판원 직원 뿐만 아니라 외부전문가들에게서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후 비상임심판관 중임 제한을 완화하는 법령 개정작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기재부 세제실과도 기초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세심판원이 마련한 중임제한 완화 방침에 따르면, 우수한 비상임심판관을 오랫동안 활용하기 위해 현행 1회에 한정된 중임제한을 2회(9년)로 늘리고, 필요시 1회에 한해 추가 위촉하기로 했다.
법안이 통과되면 최장 12년까지 비상임심판관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조세심판원 관계자는 “비상임심판관 위촉 단계에선 대형 법무·회계·세무법인 소속 자격사를 배제해 심판결정의 공정성을 높여나가겠다”며 “위촉됐더라도 전문성과 책임성이 부족한 비상임심판관은 즉시 해촉할 수 있지만, 우수한 비상임심판관은 장기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납세자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