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세무법인 위드윈' 회장에 취임…조세전문가로 본격 활동
"후배들이 오고 싶어하는 세무법인 일구자"는 김재철 대표와 의기투합
'영·호남, 행시·세대' 인력풀 구성…위드윈, 메이저 세무법인으로 거듭나
"일복 타고 났다" 평가처럼 국세행정 변혁기마다 핵심업무서 맹활약
공직 후배들에 "제일 중요한 것은 업무를 대하는 마음 자세다" 조언
김태호 전 국세청 차장이 지난달 '세무법인 위드윈' 회장 취임을 시작으로 인생 2막을 새롭게 열었다.
30여년간 국세공직자로서의 삶을 뒤로 한 채 본격적인 세무대리인의 길을 걷는 김태호 위드윈 회장은 공직 재직시 "일복을 타고 났다"는 말을 들을 만큼 국세행정 변혁기마다 항상 주요 보직에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종합부동산세 첫 시행 당시 국세청 종합부동산세과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업무추진 과정에선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부하 직원들에겐 한없이 따뜻한 상사였기에 국세청 직원들이라면 '한번은 반드시 함께 근무하고 싶은 상사'로 꼽는다.
김 회장은 지난 8월 명예퇴임 이후 수많은 세무·회계법인의 구애가 이어졌음에도 세무법인 위드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후배들이 오고 싶어 하는 세무법인을 함께 만들자는 김재철 대표세무사(전 중부지방국세청장)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넌지시 말했다.
세무법인 위드윈은 호남 출신이자 국세청내 대표적인 인력풀인 세무대학을 나온 김재철 대표세무사가 중부지방국세청장을 명예퇴임한 직후인 지난 2022년 9월 창립한 세무법인이다. 영남 출신이자 행정고시 출신인 김 회장의 합류에 따라 '영·호남'과 '세대·행시 1급'이 포진한 중량급 세무법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공직자라는 신분에 얽매어 사람들과의 교류가 한정될 수밖에 없었으나, 자연인으로 돌아간 지금은 사람들과의 만남에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김 회장을 지난 13일 세무법인 위드윈 집무실에서 만났다.
□퇴직 후 3개월만에 세무법인 위드윈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동안 휴식시간은 가졌나?
"행시38회에 합격해 1995년 4월 공직에 들어선 이후 올해 8월 말에 퇴임했으니 약 29년5개월간 세무공직자로서 생활했다. 9월에 아내와 9박10일 일정으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갔는데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는 것 만큼이나 운이 좋게도 오로라를 맘껏 볼 수 있었다. 공직을 이유로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는데 다행히도 아내와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여러 세무·회계법인에서 러브콜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창립 3년차'인 세무법인 위드윈을 선택한 배경은?
"김재철 대표와는 국세청에서 수십 년 함께 생활했지만 단 한번도 한 부서 내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그러나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공직 재직시 김 대표의 덕담도 수시로 들었고.
퇴임 이후 김 대표가 찾아와서 '후배들이 퇴임하면 꼭 오고 싶어하는 세무법인을 함께 만들자'고 말을 하는데, 진정성 있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고 나 역시도 발전적으로 하나씩 이룩해가는 세무법인에 힘을 보태고 싶었기에 위드윈 합류를 결정했다."
□국세청 명예퇴임 직전 강민수 국세청장이 찾아와 노하우를 많이 얻어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서너 번 오신 것 같다. 그냥 부르시면 되는데 차장실에 오셔서 본청의 업무 분위기와 대외기관과의 관계 등을 물었다. 강 국세청장께서도 사실 본청 경험이 많고 기획조정관도 하셨기에 저 보다 훨씬 업무경력이 풍부하지만, 본청에서 약 3년 가량 떠나 있었기에 빠르게 업무를 파악하고자 여느 청장보다 더 열정적으로 임하셨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합격한 후에 중퇴한 후 다시 서울대 경제학과에 합격해 입학했는데.
"공부를 하고 싶었다. 사실 원래 제 꿈은 교수였다. 그런데 현재 공직에 있는 친구가 흔한 박사보다는 공무원이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조언을 해 대학원 2학년 때 진로를 변경했다. 그나마 고시 공부가 수월했던 것이 대학원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했던 과목이 행시 재경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사실은 교수가 제일 좋고, 그걸 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도 든다.(웃음)"
□국세청의 업무는 본청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본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업무는 무엇이었나?
"본청 종합부동산세 T/F 시절이 가장 생각난다. 종부세는 신설 세목이었고 당시 2004년 10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TF 팀장부터 종부세과 1팀장까지 약 5~6년 정도를 계속했다. 개인적으로 그 당시가 너무 힘들었고 오히려 그 뒤부터는 조금 편했다.
종부세 도입 당시에는 신고제였으나 고지로 변경됐고 납부기준도 인별 9억원에서 세대별 6억원으로 바뀌는 등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 당시 일선에선 제대로 된 안내·상담이 어려워 본청으로 전화가 폭발적으로 걸려 왔고, 출근해서 퇴근까지 한 통화에 30~40분씩 열통의 전화만 받다 보면 하루가 끝났다. 평생 들을 욕을 그 당시에 다 들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악성민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 전화가 끝나 갈 즈음엔 '당신들이 잘못한 건 아니다. 법을 만드는 곳이 아니고 집행하는 기관이기에.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닌 것을 알고 있는데 말 들어줘서 고맙다'는 납세자의 말에 스스로를 추스렸던 것 같다."
□공직생활을 마친 지금, 아쉬움으로 남는 점이 있다면.
"서울청 조사4국에서 약 7개월 근무한 후 종부세 TF로 갔는데, 되돌아보면 서울청 조사4국 등 지방청 조사국 근무를 조금더 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서·과장이 되고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결재를 했지만, 팀장으로서 필드에서 직접 조사를 하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세종시에서 거의 7년을 생활했는데, 이 시기가 자녀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와 겹쳤다. 과천 등지에서의 교육기간을 제외하곤 사실 가족과 거의 떨어져 있었는데, 오히려 제가 가까이 있지 않아 더 잘됐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자녀들이 한창 성장할 중요한 시기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
김태호 회장은 지방청 조사국 현장근무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지만 사실 그는 조사국에서 오래 근무해 조사실무에 아주 밝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청 조사국에서 조사2과장·세원정보과장·조사기획과장을 지내는 등 국세청 전체 세무조사 방향을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중부청 조사2국장·본청 자산과세국장으로 있으면서 재산제세 조사를 관장한 인물이다.
□종합부동산세 TF를 시작으로 상속증여세과장, 자산과세국장 등 고위직으로는 드물게 재산제세 분야에서 오래 근무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시기적으로 재산제세 분야에 대한 이슈가 많을 수밖에 없다. 과거엔 상속이나 증여를 할 만한 재산이 없었으나, 이제는 상속·증여를 하거나 받으려는 세대가 부지기수다.
공직에서 퇴직 이후 기업하는 분들과 이젠 편하게 만나는데, 그분들이 제일 걱정하는 것이 '어떻게 넘겨줘야 하는가이고, 젊은 분들은 어떻게 하면 순조롭게 승계를 받느냐'는 고민이 크다.
사실 올해 세법개정안에서도 이번 부분이 반영되지 못했는데, 시간이 문제일 뿐 이대로 갈 수는 없으므로 언젠가는 바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국세공무원에 대한 인기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있다. 요즘 청년들은 지방직을 더 선호한다는 얘기도 많다.
"급여는 다 똑같지만, 일단은 어느 한 지역에서 계속 생활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국세공무원의 경우 사실 전국으로 돌아다니면서 근무를 해야 하는데, 가족간의 생활이 굉장히 흐트러지는 것이 국세청보다는 지방직을 선호하는 주된 요인으로 보인다.
더욱이 본청이 세종시에 소재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더 가속화된다. 하위직으로 공직에 입문해 승진을 하려면 본청에서 어느 정도 고생을 해야 하는데, 본청에서의 생활은 완전히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월 100만원 이상 생활비를 써야 하므로 사실상 100만원 감봉 처분을 받게 되는 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위직 직원들에게 월 100만원의 생활비는 매우 큰 금액이다.
세무사 자격과 관련한 인센티브가 없는 것도 국세청 선호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경제적·가정적으로 혜택이 없는 상황에서 공직사명·자긍심 만으로는 유능한 직원을 더이상 붙잡을 수 없다."
□국세청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공직생활에 대해 조언한다면.
"제가 늘상 후배들에게 얘기하는 것인데, 전문적인 지식이 중요하고 베이스가 되면 좋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업무를 대하는 마음 자세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주어졌을 때 크게 두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떨어진 일을 자기한테서 벗어나도록 빨리 하려는 친구들이 있다. 자기가 해야 될 최소한만 하고 과장을 주든지 국장을 주든지 던지는 것이고 그것만 벗어나면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가 아니고 과장이나 국장의 관점에서, 본청의 경우에는 본청장의 관점에서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 쪽지 보고가 올라오더라도 이 친구가 어느 정도선까지 고민을 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어떤 이슈가 언론이나 국회에서 문제가 됐을 때 청장이 어떤 답변을 하는 게 맞는지 라는 관점에서 일을 하는 친구는 페이퍼의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국회에 Q&A 자료를 설명할 때 여당 의원과 야당 의원이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답변은 더 정확히는 뉘앙스가 달라야 한다.
그런데 첫번째 유형의 직원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그대로 복사를 해서 올라오는데, 사실 틀린 게 아니므로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반대로 내용을 좀더 보강하고 바꿔서 답변자료를 준비하는 직원의 경우 '이 친구가 치밀하게 고민을 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나중에 더 믿을 수 있고 함께 근무해도 되겠다 라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김태호 세무법인 위드윈 회장은... ▷1968년 ▷경북 월성 ▷부산 동성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주리주립대 행정학 석사 ▷행시 38회 ▷국세청 종합부동산세과 ▷김해세무서장 ▷서울청 신고분석1과장 ▷국세청 상속증여세과장 ▷국세청 조사2과장 ▷국세청 세원정보과장 ▷국세청 조사기획과장 ▷국세청 운영지원과장 ▷중부지방국세청 조사3국장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중부지방국세청 조사2국장 ▷국세청 전산정보관리관 ▷국세청 자산과세국장 ▷국세청 개인납세국장 ▷대구지방국세청장 ▷국세청 차장 ▷세무법인 위드윈 회장(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