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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9.21. (토)

[납세자의 날 현상공모 주부세금수기 입상작]동상 수상작-②

국밥 한그릇에 세금 한닢 - 유대성(전북 전주시)


"아이들과 함께 도움받았으니
세금내면서 열심히 살겠다
애써 번돈 정말 잘 썼으면"

굴 만나러 찻집에 갔다가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표지가 낡은 잡지 한 권을 집어들었다. 일본에서는 전업주부들에게도 세금을 물리자는 주장이 나왔다는 기사가 있었다. 나라에서는 연금 재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데 전업주부들은 연금기관에 한푼도 내지 않으면서 나이 들어서는 완전한 연금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수준의 노후혜택을 앞으로도 유지하려면 전업주부에게도 연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누가 이런 발상을 내놨는지 몰라도 전업주부란 걸 증명해야 세금을 면제해 주겠다는 그런 조치만 나와도, 아마 많은 사람들이 세무서 가서 따지고 절차 밟고 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세금을 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도 마찬가지다. 소규모로 음식점을 시작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그럴거라 생각하지만, 처음부터 뭘 얼마나 남겨보겠다는 생각으로 장사를 하진 않는다. 그저 남들 월급받는 정도의 수익만 생기면 좋겠다는 계산으로 장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세금도 나오면 계산하고 따지지 않는 편이다.

처음에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세금을 줄여보려고 무척 애를 썼었다. 알다시피, 세금내는 게 꼭 남한테 내돈 빼앗기는 것 같아서, 유쾌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막연히 생각했던 것과는 액수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혹여 표 안나고 세금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고심했었지만, 장사해야 할 사람이 다른 쪽에만 신경을 쓰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세금 나오는 대로 척척. 그러니 세무서쪽에서 생각하면 나 같은 고객은 정말 고마운 사람일 거다.

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어떤 모자를 보고 나서였다. 몇해전엔가 명절 전날이었다. 허름한 차림새의 엄마와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법한 두 아이가 식당에 들어왔었다. 콩나물 국밥 한 그릇을 시켜 나눠먹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서, 아이들에게 줄 요량으로 작은 그릇에 2인분을 더 담아들고 다가갔었다.

사고로 일년전에 남편을 잃은 아이 엄마는 혼자 살아보려고 애쓰다가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어떻게 살았냐고 했더니 나라에서 이래 저래 많이 도와줬더란다. 쌀과 부식, 그리고 아이들 놀이방까지 나라에서 보조해서 살 수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꼭 어려운 곳에 얼마씩 내는 것만이 봉사는 아니라고 했다. 나라에 세금 꼬박꼬박 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자신과 아이들이 도움을 받았다며 자신도 이제 세금 내면서 살 수 있게 열심히 일할 거라고 했다.

밥값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한 그릇 분량의 값을 받았다. 애기 엄마는 지금 세금을 낸 거라고 얘기하면서….

정직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만 돈이란 것의 속성이 워낙 묘해서 물처럼 자연스레 흐르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3천원짜리 국밥 팔아서, 24시간 잠도 못 자고 애쓰는 국밥집 식구들 월급 주기에도 모자란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천연 무공해 재료만 쓰려고 하다 보니 재료비도 많이 들고, 또 영세한 야채상들은 세금자료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경우가 태반사다. 영수증을 제출하면 세액공제가 될 수 있다고 세무서에서 귀띔을 해주었지만, 시장 골목에서 자리 펴고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세금영수증이 있을까, 그러니 세무 행정이 현실을 완전히 소화하지는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자료, 물론 노작해서 이익을 볼 수도 있지만 최고 맛있는 국밥을 판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양심을 속이는 짓은 하기 싫어서 그냥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다.

작년에는 우리 가게에 세무조사가 나왔었다. 국밥집이 장사가 너무 잘 되니 버는 것도 많을 거라고 누군가 얘기했단다. 세무조사를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치 금방 가게문을 닫아야 할 것처럼 떨리는 마음이라니…. 세법이란 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두려움을 부채질했다. 그래서 굳게 마음을 먹고 높아만 보이는 세무서 문을 두드렸다. 정직하고자 애썼던 그간의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얘기나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세무서 이용은 무척 간단한 일이었다. 직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조목조목 항목을 짚어가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고, 막연하기만 했던 세무처리절차가 손안에 잡히기 시작했다. 괜히 무섭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세무서 직원들의 인상이 바뀌면서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세무서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큰 소리가 나는 상황이 있으려니 생각을 했는데 막상 직원들의 친절과 배려를 경험하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웃음이 스르르 배어 나왔다. 결과적으로 세무서 직원들의 도움으로 난감했던 문제들은 모두 해결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까지 세금을 보는 눈이 투명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공적자금 비리니, 국민연금관리 비상이니 이런 뉴스를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터질 것 같다. 어떻게 번 돈인데….

꾸벅꾸벅 졸다가도 손님 한분 들어오면 친절하게 인사하는 가게아줌마들의 잠이고, 뜨거운 국밥통 앞에서 하루종일 천연국물을 끓여대는 주방장의 땀이고, 명절에도 쉬지 않고 일하는 바람에 아쉬워하는 그 가족의 눈물이다.

그야말로 피같은 돈 거둬서 만든 세금을 어떻게 관리하길래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새어나가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노릇이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라'는 우리 속담도 있지만 개미처럼 벌어도 베짱이처럼 쓰는 사람이 있으면 백날 고생도 헛수고다.

세금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우리가 이름을 올리고 이곳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가는데 들어가는 비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 비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국민들을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 부담의 의무를 거부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애써서 번 돈, 정말 잘 썼으면 좋겠다. 세금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1원짜리 하나까지 그 돈에 깃든 국민의 땀방울과 노고를 기억하길 바란다. 그런 확신만 있으면 기쁜 마음으로 세금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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