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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12.20. (금)

故 조홍제 효성그룹 회장의 稅金觀과 납세철학-②

개인 호주머니와 국고


60년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세무행정에 관한 입법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세무 관리들의 해석 여하에 따라 고지서에 적혀 나오는 세금 액수가 줄어들었다 늘어났다 하던 시절이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나 할까?

그런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고위 세무공무원이 어느날 효성의 경리 담당 임원을 좀 만나자고 청했다. 임원이 긴장해 그와 마주앉았을 때 그 공무원은 뜻밖의 제의를 하는 것이었다.

"이번 기에 당신네 회사 세금으로 6억원이 나왔소. 그런데 3천만원만 나에게 내면 한 3억원쯤은 감해줄 수도 있소. 하지만 오해는 마시오. 이 3천만원은 내 개인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게 아니오. 우리 부서에서 지고 있는 빚을 갚는데 쓰려고 하니 그리 알고, 이 제의를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모레까지 알려주시오."

이 이야기를 듣고 온 후, 그 경리 담당 임원은 혼자 머리를 싸매었다. 원리원칙대로 한다면 당연히 그런 제의는 거절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3억원이라는 돈은 뿌리치기 힘들만큼 강한 유혹이었다. 머리를 굴려보니 전무, 부사장, 사장 등을 설득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회장인 만우였다. 나오는 세금은 꼬박꼬박 납기내에 챙겨 내시는 어른이니, 그런 제의를 했다가는 말도 꺼내기 전에 거절당할 것이 뻔해 보고를 해야 하나 말야야 하나 망설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억원이란 액수는 그냥 넘겨버리기엔 너무나 큰 돈이었다. 그래서 그는 큰마음 먹고 회장실로 들어갔다.

"저, 이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만…."

임원은 어렵게 입을 떼어 만우에게 정황을 이야기했다.

"그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3억원이면 큰 돈이라, 솔직히 말씀드리면 마음이 움직입니다만…."

그러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만오가 호통을 쳤다.

"안되네!"
"네?"
"왜? 못 알아듣겠는가? 아무리 저희들 부서의 빚이라지만 그 돈은 결국 그들 호주머니에서 왔다갔다 하는 거 아니겠나. 하지만 우리가 3억원을 낸다면 그것은 국고에 들어가는 거다. 국고에 들어가면 나라일에 쓰는 것이고, 결국 우리 국민 모두가 혜택을 보게 되니, 어느쪽이 올바른 일인가 말일세."

개인 호주머니와 국고는 다르다는 말에 그 임원은 무색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만우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다.

"그 작자 만나거든 내가 워낙 고집불통이라서 안된다 하더라고 딱 잘라서 거절하게. 그렇지만 두고 보라고. 저들도 한 말이 있으니 그래도 6억원을 다 내라 하지는 않을 거야. 그런 제의는 아무에게나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여겨야 비로소 부탁을 해보는 것이니, 자네에게 손해되는 일은 하지 않을 걸세."

이렇게 해서 세무서측의 제의는 없던 일로 돼 버렸다. 그리고 얼마후, 걱정했던 세금은 6억원이 아니라 4억원으로 낮춰져서 부과됐다. 만우의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그 임원이 즐거웠던 것은 세금이 적게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절세(折稅)를 할 수 있을까 하고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는 세태에 '개인 호주머니와 국고는 엄연히 구별해야 한다'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명제를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한 사람'에게서 받은 감동이 그리 오랫동안 흐뭇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군자는 대로행(大路行)이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누가 보더라도 떳떳한 공명정대한 바른 길을 택한다는 뜻이겠다. 삿된 이익에 마음을 뺏기지 않았던 만우의 대로행이 오늘에 와서 더욱 전설처럼 여겨지는 것은 어떤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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