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검색

구독하기 2024.09.21. (토)

제1회 국세공무원 문예콘테스트-수기부문 장려상 수상작 ①

내가 고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한연호
(서울廳 개인납세2과)

프로필-필자는 '57년 전남 순천生으로 순천고를 졸업하고 '76년 세정에 첫발을 들여놓은 이래 순천·서광주·양천세무서를 거쳐 현재 서울지방국세청 개인납세2과 재산계의 실무 주역이다. 재직중 서울산업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산업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주경야독하는 학구파로 세정과는 다소 먼 건축학을 전공하지만 재산세 행정이 건축과는 전혀 별개가 아니라는 논리를 편 필자 한연호씨는 “본인의 체험담을 그저 써내려간 게 덜컥 당선됐다”며 은연중 자신의 천부적인 글 재주를 자랑으로 당선 소감을 피력.

“땅은 판 것도 아니고 빚을 못 갚아서 대신 땅으로 준 것인데, 왜, 양도소득세가 과세됩니까? 그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
`납세자보호담당관'이 눈에 들어왔다.
·
“선생님의 경우 94년 기준시가가 1억6천만원이더라도 실지거래가액에 의한 양도가액은 2천만원이니……”
·
지방청 사무실을 나와 종로거리를 걸어가는 발걸음은 정말로 가볍고 흥겨워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였다.


어젯밤 나는 꼭두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결국 뜬눈으로 하룻밤을 보내고 말았다. 어제 아침 공항에서 출국도 하지 못하고 호텔로 되돌아 온 것은 놔두고라도 세상에 한점 부끄럼이 없이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내가 출국대 앞에서 범죄자로 취급받아 쫓겨났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출국금지 대상자로 찍혔단 말인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하고 또 해 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10여년전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나는 한달전 쯤 한국에 혼자 남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딸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빠, 선영이예요. 저는 그동안 친구처럼 교제하던 기영씨와 결혼하기로 했어요. 아버지 결혼식에 오실거죠? 꼭 오세요.”

나는 딸아이에게 늘상 “좋은 사람 생기면 부모 승낙같은 거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지 결혼해라”라고 했기 때문에 갑자기 그런 연락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축하한다, 선영아! 그래, 엄마랑 꼭 참석하마!”

나는 대견스러운 딸아이를 생각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후 나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들뜬 기분이 되어 아내와 함께 고국에 실로 10년만에 왔다.

둘째딸의 결혼식을 조촐하게 마치고 신혼여행을 보낸 후 그동안 못 만났던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보름간의 체류기간을 마치고, 어제 아침 출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서 탑승객 대기실에서 오랜만에 한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미국 LA행 ○○항공 탑승객 여러분께서는 탑승수속을 밟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낭랑한 목소리의 안내방송을 듣고는 비행기표와 여권이 든 손가방을 챙겨들고 출국 심사대에 다가갔다. 마누라는 먼저 수속을 마치고 내 순서가 되었을 때였다. 내 여권을 한참 동안이나 들여다보고 또 다시 컴퓨터를 두들겨 보던 심사대 공무원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굵고 나지막한 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출국하실 수 없습니다.”

나는 일순간 `내가 범죄자로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나?'하는 공연한 불안감과 함께 등골이 오싹하는 냉기가 스쳐 지나갔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아니, 왜죠? 뭐가 잘못됐나요?”

나는 떨리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면서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한번 출국 심사대 직원에게 물었다.

“왜요? 무슨 이유입니까?”

“선생님은 출국금지 대상자로 출국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직원은 사뭇 냉랭하면서도 극히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무슨 말입니까?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출국금지 대상자입니까?”

나는 신음하듯이 조그마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심사대 책상을 잡고서 간신히 힘겹게 버텼다.

“선생님은 국세청에서 1억원 정도의 고액체납자로 출국금지를 요청했기 때문에 출국이 금지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슨 세금 때문인지는 전혀 모르니 세무서에 가 보십시오. 어쨌든 출국하실 수 없습니다.”

“여보, 왜 그래요? 뭘 잘못 했어요?”
이미 심사대를 거친 아내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고 나는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아내가 오히려 나보다도 더 애처롭게만 느껴졌다. 정말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국세를 1억원이나 체납했대! 그래서 출국금지가 되었다는 거야. 여보, 먼저 가. 무슨 착오가 생긴 모양인데 잘 알아보고 해결한 뒤에 다음 비행기로 갈께.”

나는 창피하고 두려운 마음에 재빨리 빠져나와 호텔로 다시 되돌아 와야만 했다.

`아니, 내가 안 낸 세금이라고는 한푼도 없이 미국으로 이민 갔는데, 무슨 체납이 1억원씩이나 있다는 얘기야?'

밤새 동안 내내 뒤척이며 뜬눈으로 아무리 생각해 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세무서에 가서 반드시 따져야겠어. 왜, 나한테 체납이 있다는 거야?'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출국 못한 분풀이는 물론 손해배상까지 청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마음이 급하여 아침식사도 안하고 호텔을 급히 나섰다. 세무서에 도착하여 1층의 납세서비스센터로 갔다. 나는 대뜸 맨 처음 보이는 남자직원에게 체면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고 심기불편한 마음을 드러내면서 다짜고짜 고함을 쳤다.  “내가 체납이 있다고 어제 공항에서 출국금지 당해 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쫓겨났는데, 도대체 내게 무슨 놈의 체납이 1억원씩이나 됩니까?”

일순간 사무실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잠시 여기 앉아서 흥분을 가라앉히시고 자초지종을 말씀해 주십시오.”

직원은 눈을 휘둥거리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애써 숨기고는 침착하게 말했다.

나는 어제 황당하게 당했던 일들을 큰 소리로 떠들었다. 그래야만 그곳 직원들이 더 많은 신경을 써 줄 것만 같았다. 메모를 하면서 조용히 듣고 있던 직원은 내 주민등록번호를 묻고는 한참 동안 컴퓨터로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다.

“선생님에게 양도소득세가 97년 1월 31일 납기로 6천3백만원이 고지되었고, 지금은 중가산금을 포함하여 9천1백만원이 체납되었습니다.”

나는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고함으로 맞받아 쳤다.

“아니, 내가 부동산을 판 적도 없는데 무슨 놈의 양도소득세란 말이요? 세무서에서 뭔가 잘못했으니 다시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나는 그런 고지서도 받지 못했는데, 체납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나는 더욱더 언성을 높였다.

“선생님, 너무 흥분하지 마십시오. 세무서에서 세금을 고지할 때에는 충분히 과세요건을 확인하고 고지서를 보냅니다. 그러니 곰곰이 한번 더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에 부동산을 파신 적이 없습니까?”

그 직원은 침착하면서도 차근차근 말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딱 부러지듯이 말했다.

“나는 부동산을 판 적도, 세금고지서를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양도소득세를 부과한 부서로 선생님을 안내해 드릴 테니 그곳 실무자에게 과세경위를 한번 알아보십시오”하면서 나를 `재산세계'라는 부서로 안내해 주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앞서 했던 것처럼 큰소리로 또 떠들었다. 내가 갑자기 들어와 큰소리로 떠드는 것을 본 한 늙수그레한 직원이 내게 다급하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어떻게 오셨습니까?”

의자를 권하면서 나를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내 얘기를 대충 들은 그 직원은 이민 가기 전의 예전 주소를 묻고 담당실무자를 불러서 뭔가를 얘기했고, 이내 그 직원은 사무실 옆의 창고에 들어가더니 서류를 한아름 들고 나왔다. 그리곤 나로서는 전혀 무슨 뜻인지도 모를 기재 내용들을 보고 나서는, 분명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은 95년 5월에 관악구 ○○동의 임야 1천5백12.5㎡를 양도하였지만, 소득세법에서 규정한 자산양도차익 예정신고는 물론 확정신고도 하시지 않아 무신고자로 기준시가에 의하여 양도소득세를 계산하여 6천3백만원 정도가 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금고지서는 선생님이 이민을 가서 우편송달이 곤란하여 국세기본법에서 규정한 대로 공시송달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세법상 전혀 하자가 없는 정당한 과세입니다. 그 부동산을 양도하신 적이 없습니까?”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