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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9.21. (토)

제1회 국세공무원 문예콘테스트-수기부문 장려상 수상작 ②

내가 고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순간 나는 멍한 상태가 되었다. 기고만장했던 종전의 나는 간 곳 없고 갑자기 비 맞은 병아리처럼 초라해졌다. 나는 이민 가기 전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내가 처분한 부동산이라고는 다급하게 이민 가는 바람에 빚을 갚지 못한 대신 주었던 땅밖에 없는데, 그 땅 때문이란 말인가? 그 땅 외에는 다른 부동산을 처분한 사실이 없는데……'.

“아니, 내가 그 땅은 판 것도 아니고 빚을 못 갚아서 대신 땅으로 준 것인데, 왜, 양도소득세가 과세됩니까? 그런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거세게 항의하였다. 그렇게 해야만이 체면이 조금이라도 설 것만 같아서였다.

“선생님은 빚을 갚지 않은 대신 땅을 준 것은 대물변제에 해당되고, 빚만큼 땅으로 준 것은 그 부동산을 판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유상양도로 보아 소득세법에 의한 과세대상입니다. 그리고 무신고이기 때문에 기준시가로 과세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을 내셔야 하는데 체납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국금지 조치를 했던 것입니다.”

확신에 찬 직원의 답변은 당당하였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버텨 볼 심산으로 태연한 척 했다.

“그 서류 좀 보여 주십시오.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나는 직원의 손에서 양도소득세를 계산한 서류를 나꿔채듯이 받아서 자세히 읽어보았지만 내용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게 고지된 세금임은 분명하였다.

“아무튼 과세대상이라고 하니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내가 자세히 알아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 자리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온 나는 곧바로 대학동창이 운영하는 변호사사무실을 방문하고, 세무사사무실 등을 방문하면서 물었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방법이 없습니다. 그 세금을 납부하셔야 합니다. 더욱 법정불변기한을 넘겨서 소송도 불가능합니다.”

참으로 억장이 무너질 것 같았다. `세무사도 변호사도 모두 방법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제는 어떻게 하지……. 세무서에서 그렇게 떠들었으니 괘씸죄로 될 일도 안 될 텐데, 어떻게 하면 좋지?'

온갖 생각을 다 떠올려봤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음날 나는 다시 그 세무서를 찾아갔다. 다시 가서 부딪혀 보면 방법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을 걸고 담당직원을 찾아가서는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아주 공손하게 말을 꺼냈다.

“어제는 정말로 미안했습니다. 어떤 방법이 없겠습니까? 방법이 있으면 좀 도와 주십시오.”

나는 진심으로 선처를 당부하였다.

“나는 그 땅을 2천만원 빚 대신에 아무 생각없이 넘겨 준 것인데 세금이 6천만원씩이나 나오다니,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도와 주십시오. 어제는 정말 미안했습니다”하면서 통사정을 했다.

하지만 그 직원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퉁명스럽게 어제와 동일한 내용만을 되풀이했다.

“선생님, 저로서는 도와드릴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세법에 정한 그대로 적법하게 과세한 이상 달리 방도가 없고, 무신고하셨기 때문에 기준시가로 과세한 것입니다. 미안합니다.”

메아리 없는 하소연일 뿐이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으로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1층으로 맥없이 내려오는데, 눈에 번쩍 뜨이는 단어가 있었다.

`납세자보호담당관'

모든 납세자가 당한 세제상의 억울한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방문하여 상담할 수 있고, 상담내용은 절대비밀과 신분보장을 해 주며, 법이 허용하는 한 최대한 관용을 베푼다는 `납세자보호담당관'이라는 제도를 알리는 안내문이 내 눈에 쏙 들어 온 것이다.

나는 곧바로 납세자보호담당관실을 찾아가 지금까지의 모든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내 불찰을 후회하면서 진심어린 마음으로 선처를 당부하였다.

“납세자보호담당관님! 제발 제가 체납된 국세를 마무리하고 미국으로 떠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지금 제가 무슨 수로 세금을 1억원씩이나 낼 수 있겠습니까?”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소연하였다. 내 말을 자세히 들은 그는 이곳 저곳에 전화를 걸어서 내 사정을 설명하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상대편으로부터의 답변은 내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왜, 신고하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의 사정은 정말로 딱하지만 방법이 없습니다.”

납세자보호담당관의 대답도 역시 같았다. 정말로 낙심천만이었다. 나는 한마디 말도 못한 채 사무실에서 나올 생각도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서 고민하고 있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지방청에 한번 가보시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하면서 지방청 양도소득세 담당 실무자를 소개해 주었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감사합니다. 내일 꼭 찾아가 보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지방청에 가서 어제 소개받았던 직원을 찾았다.

“이길호 선생님을 찾는데요.”

사무실 첫머리에 앉아 있는 여직원에게 물었다. 그러자 한 직원이 나를 쳐다보고는 의자를 내밀면서 말했다. 상당히 호감이 가는 얼굴에 안경을 쓴 40대 중반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이길홉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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