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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기 2024.09.21. (토)

제1회 국세공무원 문예콘테스트-수기부문 장려상 수상작 ③

내가 고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나는 며칠 동안에 벌어졌던 일을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출국이 금지되고, 세무서에 갔던 일, 법원판결로 대물변제된 사실, 변호사와 세무사사무실에 찾아갔던 일 등을 자세히 설명했다. 내 말이 끝나자 메모를 해 가면서 경청하던 그 직원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아마도 내가 찾아갔던 세무서로 전화를 하는 모양이었다.

“김 조사관님! 지방청 이길혼데요, 그 양도세 결정 결의서를 팩스로 보내 주세요. 제가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얼마 후, 며칠 전에 내가 보았던 그 서류가 팩스로 도착하였다. 팩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던 직원은…….

“선생님이 대물변제로 양도한 부동산은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과세경위는 충분히 이해하시죠?”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듯이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빚 대신 갚은 것으로만 알았지, 그것이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 부동산을 얼마에 대물변제 하셨습니까?”

“아, 예. 그때 내가 빌려쓰고 갚지 못한 돈이 2천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빚 대신에 그 땅으로 갚은 꼴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신 내용을 서면으로 입증하실 수 있습니까?”

거짓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듯이 날카롭게 되묻는 말에 나는 잠시 동안 머뭇거렸다. 10년이나 지나버린 과거의 일을 정확하게 떠올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기억해 내지 못하면 미국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강박관념이 짓누르고 있었기에, 그 때의 상황을 반드시 설명해야만 했다. 

“아, 예. 10여년전 당시에 제가 빚을 갚지 못할 경우에는 대신에 소유권 이전등기에 필요한 일체의 서류를 넘겨 줄 것을 약정한 각서가 있었고, 그 후 채권자는 그 각서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소유권 이전등기를 이행하라는 판결로 95년 9월에 소유권 이전등기된 것 같습니다.”

나는 간절한 심정이 되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하신 내용에 대한 확실한 서면에 의한 증빙입니다. 말씀으로만이 아닌 증거서류를 제출하실 수 있습니까?”

순간 나는 등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차마 그런 서류를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류를 잘 챙겨 놓을걸 하고 후회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끝에 꺼져 가는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그때 서류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법원 판결문을 찾을 수는 있을 겁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아, 그래요. 그러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면 판결문에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있을 것 아닙니까? 판결문은 우리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정 없으면 법원에 가서 판결문 사본을 받아오면 됩니다.”

곧이어 그 직원은 어딘지 모를 곳에 전화를 했다.

“오 조사관님! 여기 지방청 재산세계 이길혼데요. 빽 한번 더 씁시다.”

“뭔데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도와 줄께요. 또 부본사본 보내주라고 하는 거죠!”

“예, 예. 맞아요. 민원인이 찾아 오셨는데,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한국에는 아무런 서류가 없고, 국세 체납으로 출국금지를 당했는데 양도된 부동산의 등기원인이 아마도 판결인 것 같습니다. 부본에 붙어 있는 판결문을 좀 봤으면 해서요.”

“부본 번호를 불러 주세요. 즉각 보내 드릴께요”

“예, 95년 9월 등기분 부본 ○○권  페이집니다.”

얼마 후에 서류가 팩스로 도착했고 그 서류는 판결문 사본인 듯했다. 그 직원은 자세히 읽고 나서는 말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실제 빚 2천만원을 대신해서 대물변제로 이전되었군요. 그렇다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무신고로 기준시가인 개별공시지가로 양도소득세를 과세받았는데, 세무서에서 과세할 때 한 가지 간과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기준시가에 의한 양도차익은 실지거래가액에 의한 양도가액을 초과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와 국세청 유권해석이 있는데도, 이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과세한 것은 잘못입니다.”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예의를 차릴 사이도 없이 되물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습니까?”

“선생님의 경우 채무변제 이행시기를 상당기간 경과한 후에 소송이 제기되었고 또한 판결 역시 장시간이 흐른 후에 났고, 그러한 시간적인 차이가 무시된 채 소유권이전등기 접수일인 1995년 5월을 양도시기로 하여 1994년도 기준시가인 개별공시지가에 의한 양도차익이 1억6천만원이라 하더라도 법원 판결문에 의해 확인된 대물변제에 따른 실지거래가액에 의한 양도가액은 2천만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기준시가에 의한 양도차익은 실지거래가액인 2천만원으로 하여 양도소득세를 결정해야 합니다.”

뛸 듯이 기쁘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하도 기뻐서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릴 뻔했다.

`양도차익을 1억6천만원에서 2천만원으로 낮추어 세금을 고칠 수 있다니!'
잠시 후 그 직원은 다시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납세자보호담당관님, 지방청 재산세계 이길홉니다. 우리 청에 오신 민원인의 양도세 결정결의서와 판결문을 읽어보니 세무서에서 잘못 과세한 것 같은데, 한번 검토해 보시죠. 잘못된 부분은 `기준시가에 의한 양도차익은 실지거래가액에 의한 양도가액을 초과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와 국세청 유권해석을 적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직원은 계속하여 납세자보호담당관과 대화를 이어갔다.

“예, 동일한 내용의 판례와 유권해석은 많지만, 우선 대법 92누11886(92.10.9)과 국세청 재일 46014-594(97.3.14)이면 충분합니다.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그러면 잘못 결정한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인되면 전화 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그 직원은 다시,

“선생님 별 문제없이 고충이 해결될 것으로 믿어집니다. 납세자보호담당관과 통화했으니 그 세무서에 가셔서 말하면 아마도 좋은 결과를 얻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 직원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일부러 미국생활에 대해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웃으면서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감사합니다, 재산세계 이길홉니다.”

“이형! 이형 말이 맞습니다. 경정해야 합니다. 즉시 고충처리결정서를 만들어 경정결정토록 해야겠습니다.”

“납세자보호담당관님이 힘들고 귀찮더라도 수고 좀 해 주십시오.”

“이형! 대단합니다. 나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원 별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수고하십시오. 또 전화 드릴께요.”

전화가 끝난 후 나는 그 직원에게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는 발걸음도 가볍게 지방청 사무실에서 나왔다.

`이렇게 후련할 수가,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휴우!'

지방청 사무실을 나와 종로거리를 걸어가는 발걸음은 정말로 가볍고 흥겨워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였다.

나는 다시 세무서를 방문하여 그 자리에서 경정결정후 세금인 6백만원을 부과받고는, 친지로부터 빌려서 납부하고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 올 수 있었다.

지금 와서 그 때의 일들을 생각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하지만 담당직원들의 배려가 너무나 고마웠다. 처음에는 조국이 체납 때문에 출국금지시킨 점만을 생각하면서 야속하고 괘씸해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감사해 하고 있다.

내가 지금도 후회하는 것은 응당 부담했어야 할 세금에 대해 `대물변제가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임을 몰랐다'는 이유 때문에 내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시켰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내 자신조차도 용납할 수 없는 부끄러움은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은 채 `나는 전혀 잘못 없이 세무서의 일방적인 부당한 과세다'라는 섣부른 단정을 짓고 세무서에 가서 소란을 피웠고, 별다른 해결책이 없음을 알고 나서부터는 정반대로 `잘 좀 봐 주십시오'하며 읍소했던 양면적인 인간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 때의 일로 인해 나는 고국의 세무행정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특히 납세자 편에 서서 공평한 업무처리를 위해 노력해 주신 국세 공무원과 납세자보호담당관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 준 고국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러한 배려와 납세자보호담당관같은 제도 하나 하나가 나처럼 해외에 나와 있는 동포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되고 더욱더 고국을 사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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